[미얀마쿠데타 1년]④총격·포격 피해 젖먹이도…태국 국경 난민촌 르포

입력 2022-01-24 07:00   수정 2022-01-24 13:15

[미얀마쿠데타 1년]④총격·포격 피해 젖먹이도…태국 국경 난민촌 르포
폭 10m 강 너머가 미얀마…태국군 경비 강화에 검문소서 차 돌리기도
"미얀마군 강가까지 쫓아와…총탄·폭탄 언제 떨어질지 몰라 도망쳐"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무서워…아이들이 위험한 장소에 있길 바라지 않아"



(폽프라[태국 딱주]=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미얀마 쿠데타 1년을 보름가량 앞둔 지난 16일 기자는 태국 북부 딱주의 폽프라 지역을 찾았다.
최근 미얀마군이 카렌주 소수민족 무장단체인 카렌민족연합(KNU) 및 타지역출신 시민군 세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카렌족 주민 다수가 국경인 모에이강을 건너 태국으로 피란 왔다는 소식 때문이다.
자유아시아방송은 미얀마군 공세가 심해지면서 지난 13일 현재 4천700명 이상이 태국으로 넘어온 상태라고 보도한 바 있다.
애초 딱주에서 활동하는 구호단체의 도움을 받아 카렌족 난민들을 만나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단체 관계자는 카렌족 난민 문제가 언론에 보도돼 이슈화되면서, 태국군이 외부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딱주에서 터를 잡고 생활하는 카렌족 도움을 받기로 했다.
딱주 매솟 시내에서 1시간가량 남쪽으로 차를 달려 난민촌이 있다는 폽프라 내 국경 지역 쪽으로 다가갔다.
거기에서 가이드는 누구에겐가 전화했고, 잠시 후 차에 탄 두 명이 일행을 안내했다.
도중에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 2∼3곳을 지났지만, 다행스럽게도 검문은 없었다.
오후 2시께 기자는 도로에서 50여m 정도 떨어져 아래에 자리 잡은 한 난민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숲 한가운데에 어느 정도의 평지가 자리한 그런 곳이었다.
난민촌 옆으로 폭이 10m가 채 안 되는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가이드는 카렌주와 딱주를 가로지르는 모에이강이라고 말해줬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이 미얀마 땅이었다. 카렌족들이 미얀마군의 공격이 심해지면 왜 태국 쪽으로 넘어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난민촌 입구에서 머리와 등에 무언가를 이고 지고 가는 아이와 여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구호품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하얀 포대에는 쌀이 들어있다고 했다. 다른 포대 입구 밖으로는 식용유 같은 식료품이 삐져나와 있었다.
언뜻 시야에 들어온 난민촌은 곳곳에 텐트와 비닐 천막이 처져있는 모습이었다. 빨래가 널려 있는 길쭉한 나무 걸대도 여기저기서 보였다.
난민촌에 온 지 얼마 안 돼서인지 몰라도 가족으로 보이는 서너 명이 나무를 부지런히 얼키설키 엮어 그 위에 비닐을 씌우고 있었다.
가이드는 태국군이 돌아다닐 수도 있다면서 되도록 인터뷰를 짧게 해주면 좋겠다며 불안한 표정으로 요청했다.



이방인의 등장에 아이들이 기자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을 향해 기자가 카메라를 돌리니 모두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은 난민촌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한 중년 남성이 아이들에 둘러싸인 채 인터뷰에 응했다.
이 남성은 태국으로 건너온 이유를 묻자 "사는 곳에 전투가 벌어졌다. 무서워서 더는 있을 수가 없었다"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 전투가 더 심해질 것 같다. 그래서. 당분간은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면서 "한 달 또는 두 달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고향의) 옥수수가 다 익어 버리면 떨어져 버린다"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 등 가족이 함께 난민촌으로 왔다는 칠래(40)씨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그는 "미얀마군이 강가까지 왔다. 그들은 카렌인들을 붙잡고 중화기로 위협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이 미얀마라면 가장 좋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위험한 장소에서 어려움을 당한다면 마음이 편치 않다"며 "마을로 돌아가고 싶지만, 군인들이 잡아갈까 두렵다"고 말했다.
"미얀마군은 카렌인들을 만나면 잡아간다.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총으로 모두 쏘아버린다"고 말하는 칠래씨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두 사람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캠프 안쪽으로 더 들어가 봤다. 대나무 숲 사이로 나름대로 구색을 갖춘 천막들이 보였다.
얼추 눈으로 셈을 해보니 20여 가구 안팎이 생활하는 것 같았다. 한 가구당 평균 4~5명 정도라고 치면 100명 안팎이 머무는 셈이다.
이들 중에는 이곳에 온 지 한 달 가까이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며칠 안 된 이들도 있다고 했다.



천막 안에 누워있던 중년 여성이 쭈뼛거리는 기자를 보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또애뿌예(50)씨는 자신이 있던 곳의 상황에 대해 "총알이 매일 날아왔다"면서 "위험을 피해 도망쳤고 나무 밑으로 피신했지만, 그곳에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음식과 머물 곳은 지원받고 있지만, 미얀마 내 우리 집의 여러 물건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그녀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내 생각엔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답답한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목숨을 이어갈 방법이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가이드가 더 머무르다간 태국군에 적발될 수 있다면서 나가자고 요청했다.
난민촌 밖으로 걸어 나가는데 젖먹이 아기가 요람 대용으로 나무 양쪽에 묶어 만든 천 위에서 평화롭게 자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옆에는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천을 조심스럽게 흔들며 바라보고 있었다.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된 아기에게 총탄이 빗발치는 공포를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는 모정이 강을 건너 낯선 태국 땅으로 그들을 이끈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가족과 함께 피란왔다는 칠래씨가 "우리 아이들이 위험한 장소에서 어려움을 당한다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한 말도 다시 떠올랐다.
난민촌을 나오면서 뒤를 돌아봤다. 이른 저녁 준비를 하는지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미얀마 땅이었다면 일요일 오후 이른 저녁 준비를 하는 산골 마을이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평온한 모습이었다.




기자는 그렇게 난민촌을 나온 뒤 강폭이 좀 더 넓은 강변으로 안내해 줄 수 있는지를 가이드에게 물었다.
폭은 넓되 수심이 그리 깊지 않은 모에이강을 통해 카렌족들이 미얀마 카렌주에서 건너편 태국 강변으로 건너오는 상황이 이날도 벌어지고 있다면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러나 검문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결국 사달이 났다.
경계병 중 한 명이 차로 다가와 일행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었고, 한 명이 "놀러 가는 길"이라고 둘러댔지만, 통하지 않았다.
가이드와 통역은 물론 기자도 여권을 제시해야 했다.



군인이 신분증과 여권을 갖고 어디론가 간 사이 통역은 기자에게 혹시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으면 "그냥 한번 와본 것"이라고 둘러대라고 했다.
취재하러 왔다고 하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약 10분간 계속된 '검문'이 1시간은 되는 듯 느껴졌다.
다행히 별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일행은 결국 그곳에서 차를 돌려야 했다.
가이드는 이곳저곳 전화를 해보더니 다른 곳도 마찬가지로 군인들이 강 쪽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번 현장 취재 전 구호단체 관계자에게 들은 그대로였다.
태국 정부로서는 카렌족 난민 문제가 계속 이슈화하는 것이 달갑지 않은 일일 수 있다.
이 문제가 커지면 커질수록 미얀마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와 태국의 군부는 오래전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매솟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카렌족 출신 통역은 "앞으로 카렌족들이 얼마나 더 넘어올지 모른다. 젖먹이를 재우던 그 젊은 엄마처럼 위험 속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하기를 바라는 이들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쿠데타 1년은 카렌족들에게도 고난의 시간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sout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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