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혈관서 발견된 면역세포 유형→혈관 약화, 출혈 유발 확인
뇌혈관 '세포 지도' 완성, 치매 등 관련 질환 치료 '청신호'
미국 UCSF 연구진, 저널 '사이언스'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흔히 뇌출혈이라고 하는 출혈성 뇌졸중(hemorrhagic stroke)은 환자의 약 절반이 목숨을 잃을 만큼 치명적이다.
미국에선 뇌졸중 환자의 10∼15%가 출혈성 뇌졸중인데 젊은 사람도 적지 않다.
뇌혈관 세포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뇌혈관 출혈을 유발하는 새로운 유형의 면역세포가 발견됐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혈관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 유형을 탐색해 각 유형의 유전자 발현 및 위치 정보 등이 담긴 '세포 지도'(atlas)를 만들었다.
뇌혈관 세포 유형의 '주기율표(periodic table)'와 같은 이 지도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40여 개의 세포 유형이 망라됐는데 출혈성 뇌졸중을 일으키는 면역세포도 여기에 들어 있었다.
이 발견은 장차 전반적인 뇌혈관 구조와 혈관 질환의 치료법 연구에 중요한 토대가 될 거로 기대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의 웨일 신경과학 연구소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27일(현지 시간)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논문으로 실렸다.
연구팀은 출혈성 뇌졸중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뇌 동정맥 기형(AVM) 세포에 초점을 맞췄다.
AVM은 뇌 발생 과정에서 뇌동맥과 뇌정맥 사이의 모세혈관이 제대로 생기지 않고 대신 기형적인 혈관 덩어리가 형성된 걸 말한다.
미국 내 의료기관 가운데 신경 수술 1위로 꼽히는 UCSF는 AVM 수술을 잘하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과학자들은 뇌 수술을 받은 5명의 간질 환자 뇌에서 정상적인 혈관계 샘플을 채취해 AVM 샘플과 비교했다.
전체 AVM 샘플 44점 중 일부만 손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리했고, 나머지는 출혈이 시작된 상태에서 떼어냈다.
이들 3개 유형의 샘플에서 분리한 18만 개의 세포를 놓고 단세포 mRNA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세포 유형과 위치에 맞춰 발현하는 유전자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런 다음 정상 세포와 병든 세포의 유전자 발현이 어떻게 다른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분석했다.
뇌혈관을 구성하는 다양한 유형의 세포가 이 과정에서 새로이 발견됐다.
이 가운데 한 그룹의 면역세포가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면역세포 무리는 뇌혈관의 부드러운 근육세포와 신호를 교환하면서 근육세포를 약하게 만들고 종국엔 뇌졸중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AVM과 같은 기형 조직이 면역계를 자극할 거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 발견은 뇌혈관 질환 치료에 대한 사고 체계를 완전히 바꿔 놓을 거로 평가된다.
이 면역세포 무리가 혈액을 타고 도는 게 확인되면, 면역계 제어를 통해 뇌졸중 위험을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주요 저자 중 한 명인 토마스 나우어콥스키 해부학 조교수는 "이번 연구가 없었다면 뇌혈관 질환의 주요 원인일 수도 있는 이 세포 집단을 정확히 집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뇌혈관 질환을 치료할 엄청난 가능성이 열렸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연구팀이 만든 뇌혈관 세포 지도는 치매 등 다른 뇌혈관 질환의 치료법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한 많은 유형의 치매 질환은 뇌혈관 이상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뇌혈관 이상이 어떻게 인지 및 기억 능력 상실로 이어지는지 이해하려면 이런 세포 지도가 꼭 필요하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나우어콥스키 교수는 "세포 지도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이번 연구가 확실히 보여줬다"라면서 "주기율표와 유사한 이 지도를 참고하면 질병이 생겼을 때 어떤 세포가 잘못됐는지 알아내 정확히 치료 표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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