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봄 발원' 튀니지 대통령의 사법부 장악에 대규모 시위

입력 2022-02-14 03:06  

'아랍의봄 발원' 튀니지 대통령의 사법부 장악에 대규모 시위
대통령의 판사임명 거부권·판사해임권 담은 포고령 발표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정치 개혁과 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걸고 총리를 해임하고 의회 기능을 정지시킨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이 사법권까지 장악하려하자 시민들이 대규모 반대 시위에 나섰다.
14일(현지시간) AFP,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튀니지 수도 튀니스 중심가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이 모여 사이에드 대통령의 사법권 장악 시도를 규탄했다.
시위 현장에서는 "국민은 당신(대통령)이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 구호는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정권의 독재를 무너뜨린 2010년 아랍의 봄 시위때 나왔던 구호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은 '민주주의를 구하라', '사법부는 건드리지 말라' 등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판사들의 무능과 부패,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재판 지연 등을 비판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지난 6일 재판부 독립을 감독·지휘하는 헌법 기구인 최고 사법 위원회(CSM)를 해체했다.
이어 이날 새로운 임시 CSM 구성을 공식화하면서 판사 임명 거부권과 해임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판사의 파업을 금지하는 내용의 포고령도 발표했다.
인권 분야 비정부기구(NGO)인 국제 판사위원회 튀니지 지부의 사이드 베나르비아 국장은 "이번 포고령은 사법부를 행정부에 종속시킨 것"이라며 "시행된다면 사법권 독립 원칙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위 현장에 있던 반정부 운동단체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에제디네 하즈귀는 "대통령에 대한 저항이 커지고 있다. 그는 곁에 있는 사람들을 잃고 이제 독단적으로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튀니지는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를 휩쓴 '아랍의 봄' 민중 봉기의 발원지로 중동에서 드물게 민주화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았다.
아랍의 봄 이후 처음으로 2018년 5월 지방선거가 실시됐고, 2019년 10월 민주적 선거를 통해 사이에드 대통령이 당선됐다.
하지만 심각한 경제난과 정치적 갈등 속에 국민의 불만이 쌓여왔고, 코로나19 대유행까지 닥치면서 민생고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헌법학자 출신인 사이에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히셈 메시시 전 총리를 전격 해임하고 의회를 멈춰 세웠다.
주요 정당들은 대통령의 돌발행동을 '쿠데타'로 규정하며 반발했지만, 정치권에 불만을 품은 일부 국민은 그의 조치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헌법을 무시한 대통령의 통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사이에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정치 경험이 없는 학자 출신의 첫 여성 총리를 임명하고 10월에는 새 내각을 출범시켰으며, 올해 7월 개헌을 추진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meol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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