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외교관들, 러시아 침공 위협에 우크라 서부로 이동

입력 2022-02-14 10:46  

서방 외교관들, 러시아 침공 위협에 우크라 서부로 이동
"39개국 우크라이나 여행 자제 경고"
"아프가니스탄 철수 혼란 의식해 대응 서두르나" 분석도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많은 서방국이 우크라이나에 있는 자국민과 외교관, 대사관 직원들을 탈출시키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뉴스 사이트 노보예브레먀는 39개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우크라이나 여행을 자제하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영공이 조만간 폐쇄될 수 있어 지금 당장 떠나지 않으면 전쟁 발발 이후에는 탈출하기 어렵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 때문에 미국은 자국민에게 지금 당장 우크라이나를 떠나라고 권고했으며 외교관도 소규모 필수 조직만을 남기고 본국으로 복귀했다.
미국과 영국 등 우크라이나에 남은 서방 외교관들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떠나 서부 도시 리비우로 이동했다.
이 때문에 리비우에서는 임시 거처를 찾아 몰려든 외교관과 사업가로 인해 호텔과 사무실들이 성황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특히 미국과 영국, 캐나다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운영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 지역 감시 담당 직원들도 철수시켰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서방이 과잉대응하고 있다며 불만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미국의 지속적인 경고가 우크라이나를 공황 상태로 만들고 경제적 혼란을 야기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조만간 우크라이나의 영공이 폐쇄될 수 있다는 소식에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가 제재를 받는 것 같다는 불평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 연안 도시 오데사에 머무는 미국인 조지프 데이비스는 미국 국무부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우크라이나를 떠나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명령은 아니었지만 매우 강력한 권고였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다만 그는 전쟁 위험이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생각하며, 그의 가족과 친구 동료들이 도시에 있기에 일단은 남아 있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반부패행동센터의 다리아 칼레니우크 사무총장은 "서방 시민들은 떠나라고 명령받았지만 우리는 갈 곳이 없다"며 "보통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서방 국가에서 자국민을 탈출시킬 만큼 러시아가 침공할 확실한 증거들이 있다면 지금 당장 노르트 스트림-2를 멈추고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에 대한 제재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국민들을 탈출시킬 충분히 강력한 정보가 있다면 지금 당장 러시아에 강경한 행동을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에 예민하게 대응하는 것에 대해 키예프 내 일부 외교관들은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빚어진 혼란스러운 철수 과정이 서방국 지도자들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결정한 뒤 탈레반이 예상보다 빠르게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하자 혼란 속에서 자국민과 대사관 직원들을 탈출시켰던 만큼,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서두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자국 외교관과 직원들을 대피시킬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키예프에서 일했던 전직 유럽 외교관 데이비드 스툴리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심지어 키예프까지 들어오더라도 서방의 대사관에서 일하는 현지 직원들을 추격하지는 않을 것이며 모든 대사관은 계속해서 그들의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번 탈출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일시적인 예방책이라는 점은 인정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laecor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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