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데이 우크라국경에선] "전쟁 없겠지만"…탈출로엔 폭풍전 고요

입력 2022-02-17 11:35   수정 2022-02-17 11:40

[D데이 우크라국경에선] "전쟁 없겠지만"…탈출로엔 폭풍전 고요
평소와 다름없이 차량·인원 국경 오가…러시아 말 한마디에 촉각
한국인 육로탈출 대비해 폴란드 국경에 대사관 사무소 설치


(메디카[폴란드]=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전쟁은 없을 겁니다"
16일(현지시간) 오후 우크라이나로 통하는 폴란드 남동부 메디카 국경검문소에서 만난 우크라이나인 보그단씨는 '러시아가 당신의 나라를 침공할 것 같으냐'라는 질문에 나름의 확신에 찬 대답을 내놨다.
이날은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일로 예고한 'D-데이'였다.
세계의 시선이 온통 우크라이나로 쏠린 날이었지만 폴란드 국경을 오가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일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메디카 검문소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 폴란드로 피란민이 육로로 탈출할 수 있는 주요 길목 중 하나다.

보그단 씨는 생필품을 사려고 평소처럼 폴란드에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아마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절대로 침공하지 않을 것 같다. 전쟁은 큰돈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강대국 러시아를 옆에 둔 탓에 항상 전쟁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으로서 체득한 희망이 섞인 논리로 들렸다.
이날 메디카 국경검문소 앞에는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려는 트럭과 승용차,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
트럭이 서 있는 줄은 길이가 약 3km 달해 끝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폴란드 국경수비대 관계자는 트럭들이 길게 줄 선 이유를 묻자 "폴란드에서 일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차량"이라며 "오늘은 다른 날보다 줄이 그렇게 길지 않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기서는 보이진 않지만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넘어오는 차량 행렬은 거기도 줄이 길다"고 덧붙였다.


인근 코르쵸바 국경검문소 앞에도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려는 트럭이 2km 이상 줄 서 있었다. 기다림에 지쳐 차에서 내려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는 트럭 운전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가 맞닿은 535km 길이의 국경엔 모두 11곳의 검문소가 있다. 우크라이나는 동쪽과 북쪽으로 러시아와 벨라루스, 서쪽으론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와 국경을 접한다.
폴란드의 메디카와 코르쵸바 국경 검문소는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우와 도로가 이어졌다.
리바우엔 현재 미국 대사관과 우리 교민들이 피신해 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와 관계가 밀접하고 지리적으로 인접한 만큼 러시아의 움직임에 민감한 분위기다. 폴란드 언론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와 관련한 뉴스가 가장 중요한 뉴스로 다루고 있다.
D-데이로 지목된 16일을 하루 앞두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변에 훈련을 명분으로 배치한 군병력 일부를 철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쟁에 대한 걱정은 다소 누그러지긴 했지만 폴란드 시민들은 여전히 러시아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운 분위기다.
당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을 통한 제3국 국민의 입국을 금지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위기가 고조되자 이번 주부터 입국을 다시 허용했다.
유사시 폴란드로 피란민이 밀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서 피란민이 최대 100만명까지 유입될 수 있다고 보고 각 지방자치단체에 비상 대피용 숙소를 마련중이다.


우크라이나 국경에 인접한 남동부 소도시인 쥬세프에서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보러 나온 주민 토맥 씨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범하면 폴란드는 하루 이틀만에 큰 여파를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 정부도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인이 육로를 통해 폴란드로 피신할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 리비우와 폴란드 국경 마을 프셰미실에 각각 임시 사무소를 설치해 지원에 나섰다.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된 우크라이나에 이날 현재 재외국민 153명이 체류 중이다. 17일까지 40명 이상의 체류 국민이 추가로 철수할 예정이다.
현지 한국대사관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서부 리비우로 가는 임차 버스를 매일 운영하며 체류 국민이 육로를 통해 폴란드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는 것을 돕고 있다.
임훈민 주 폴란드 한국 대사는 "다른 나라 국민의 사례를 보면 입국 허가 과정에서 시비가 붙는 경우가 일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라며 "이에 따라 우리 국민에게 폴란드 입국시 문제가 생기면 현장에 바로 출동해 해결하려고 임시사무소를 개설하게 됐다"고 말했다.


yuls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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