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환자 치료비 70% 이상이 한방…연 25% 내외 급증
"첩약 심사 기준대로 해달라"…보험사, 심평원에 이의 제기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25세 여성 A씨는 작년 11월 운전 중 가벼운 접촉사고를 낸 뒤 허리 통증 등으로 한의원에서 부황, 뜸 등 각종 한방치료와 함께 '팔물탕(八物湯)' 첩약 21일치를 처방받았다. 팔물탕은 생리 불순, 무월경, 빈혈 등 주로 부인과 질환을 치료하는 첩약으로 허혈 심장질환이나 신경통에도 쓰인다.
59세 남성 B씨는 작년 8월 빗길 운전 중 차량이 미끄러지며 앞차와 접촉해 어깨 통증 등으로 한의원에서 '생맥산(生脈散)' 첩약 열흘치를 받았다. 생맥산은 여름철 무기력·배탈·열사병 치료와 건강증진, 인두염(목구멍 염증), 기침으로 인한 성대·후두 질환에 쓰이는 첩약이다.
보험사는 A·B씨의 교통사고 부상 치료와 생맥산 또는 팔물탕 첩약의 상관성에 의문을 품었지만, 자동차보험 진료비 청구를 심사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문제가 없다며 모두 인정했다.
한방의료기관에서 A·B씨처럼 자동차보험 환자에게 사고 부상과 인과관계가 미약한 처방이나 기력을 증진하는 첩약을 처방하는 것은 드문 사례가 아니다.
부상과 인과관계가 미약한 첩약을 처방해도 21일치를 넘지만 않으면 심평원의 심사에서 제동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24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경상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한방 진료비 보험금은 2010년대 후반 빠르게 증가하며 의과 진료비를 추월했다.
2020년과 지난해 경상환자(상해등급 10~14등급)의 한방 진료비 증가율은 20%를 웃돌았다.
손해보험사 C사의 지난해 경상환자 한방 진료비는 2019년과 비교해 59% 늘었고, 그에 따라 전체 경상환자 진료비 중 한방의 비중은 62%에서 73%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의과 경상환자 진료비 규모는 2% 줄었다.
C사의 경우 2020년 경상 진료 인원도 한방이 의과를 추월했다. 작년에는 경상 환자의 57%가 한방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았다.
A·B씨의 사례처럼 첩약 치료는 거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경상환자 한방 진료비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첩약 청구액은 자동차보험 한방 진료비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소비자단체 '소비자와함께'가 2020년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처방받은 첩약을 다 복용한 교통사고 환자는 26%에 그쳤고, 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면 첩약 며칠 분을 받겠냐는 질문에 '안 받겠다'는 답이 61%에 달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방 첩약은 의과의 약물치료와 달리 자동차보험 수가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과잉진료를 부추기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첩약의 불명확한 심사 기준도 문제지만 이미 있는 기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게 보험업계의 불만이다.
자동차보험 수가 기준에는 건강보험 약제를 먼저 쓰고 건강보험 약제가 없을 때 비급여 약제를 쓰게 돼 있으나 엑스산제(과립형) 형태로 나오는 한방 처방을 교통사고 환자에게 쓰는 한의원은 전무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 목·허리 통증에 자주 처방되는 갈근탕 엑스산은 1회 단가가 740원이지만 한방 병의원은 7천360원을 받는 첩약만 청구한다. 심평원은 이를 지적하지 않고 청구액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이에 손보업계는 최근 심평원에 첩약 심사에 대해 이의 제기에 나섰다.
C사 관계자는 "작년 12월부터 현재까지 심평원의 한방 첩약 심사 결과 1천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며 "현행 기준이라도 제대로 반영해 심사해달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심평원은 손보업계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 "자동차보험 심사는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도 대체로 인정하는 쪽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비급여 첩약도 마찬가지"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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