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P-43 단백질 결핍→UNC13A 유전 정보 교란→신경 퇴행 가속
영국 UCL·미국 NIH 공동 연구진, 저널 '네이처'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근(筋) 위축성 측색경화증(ALS·루게릭병)은 가장 흔한 운동 신경세포(뉴런) 질환인데 근원적인 치료법은 없다.
이 병에 걸리면 동작 제어에 관여하는 뇌 또는 척수의 신경과 뉴런이 손상돼 죽는다.
아주 드물게 ALS 치료제가 승인되기도 하지만 효과는 일부 환자의 생명을 몇 달 연장하는 정도다.
대략 ALS 환자의 3분의 1은 진단 후 1년 내로 사망한다.
전측두엽 치매(FTD)는 언어 기능 장애, 성격 변화, 인지 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는 신경 퇴행 질환이다.
서로 상관없을 것 같은 두 질환의 발생과 병세 악화에, 하나의 동일한 유전적 변이가 관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TDP-43라는 단백질이 결핍돼 UNC13A라는 신경세포 단백질의 유전적 지시(genetic instructions)가 교란되는 게 주원인으로 밝혀졌다.
뇌나 척수의 신경세포는 UNC13A가 있어야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신호를 교환할 수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ALS의 97%, FTD의 약 절반이 TDP-43 단백질의 결핍과 연관됐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 발견은 사실상 불치병으로 여겨지는 ALS와 FTD의 진행을 늦추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UNC13A의 유전 정보 교란을 차단하는 게 중요한 약물 표적이 될 거로 보인다.
이 연구는 영국 유니버시티 컬리지 런던(UCL)과 미국 국립보건원(NIH)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수행했다. 관련 논문은 23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TDP-43은 ALS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단백질로 지목돼 왔다.
TDP-43이 기능을 상실하면 그 영향을 받은 신경세포들이 파괴돼 극심한 혼란이 빚어진다.
FTD 환자도 둘 가운데 하나의 빈도로 TDP-43의 이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단백질이 신경세포의 핵에서 부정확하게 방출되면 mRNA 생성 등 주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TDP-43의 결핍으로 생기는 문제를 원래대로 복원하는 실마리도 찾아냈다.
과학자들은 피부 유래 줄기세포로 신경세포를 배양한 뒤 크리스퍼-카스 9(CRISPR-Cas9) 유전자 편집 가위로 TDP-43 단백질을 제거했다.
이 실험에서 TDP-43이 없으면 UNC13A의 mRNA 정보가 교란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신경세포의 리보솜이 UNC13A 단백질을 정확히 만들어낼 수 없다는 뜻이다.
ALS와 FTD 환자의 뇌 조직 샘플에서도 UNC13A의 mRNA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
이는 배양 세포에 실험한 결과가 환자에게도 실제로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뉴런 간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는 UNC13A의 주 기능을 고려하면, 이 단백질의 생성 정보 교란이 신경 조직의 기능을 손상해 ALS나 FTD 환자의 신경 퇴행을 유발할 거라는 추론이 가능했다.
이 발견은 몇 가지 관점에서 과학계의 해묵은 미스터리를 푸는 돌파구가 됐다.
먼저 UNC13A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ALS 같은 운동 뉴런 질환과 치매 위험이 높아지는 이유가 밝혀졌다.
TDP-43의 기능 상실과 ALS가 유전적으로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규명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인 NIH 산하 '국립 신경 질환과 뇌졸중 연구소'의 마이클 워드 박사는 "오래전부터 UNC13A의 유전적 변이가 ALS와 치매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의심됐다"라면서 "이번에 ALS의 유전적 위험 요인이 어떻게 TDP-43와 상호작용해 병세를 악화하는지 정확히 확인했다"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 발견을 토대로 UNC13A의 mRNA 정보 교란을 차단하는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될 거로 기대한다.
또 한 명의 공동 교신저자인 UCL 퀸 스퀘어 신경학 연구소의 피에트로 프라타 교수는 "유전자가 운동 뉴런 질환과 FTD의 기본이라는 걸 확인한 분자생물학적 발견이 연구 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라면서 "ALS 환자의 삶을 확연히 개선할 수 있는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향후 수년 내로 임상 시험을 완료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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