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가방 널브러져…피난 못간 흔적"…"반려견도 두고 떠나"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이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피란민 행렬이 줄을 이었고, 갈 곳이 없는 국민들은 지하 대피소에서 공포에 몸을 떨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4일(현지시간) 새벽 폭격이 시작된 이후, 수도 키예프 시민 수백 명이 급히 지하철역으로 대피하면서 욕설·고성이 오가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펼쳐졌다고 전했다.
신문은 에스컬레이터로 시민들이 이동하는 동안 지상에서 폭발음이 이어졌으며, 지하철 승강장에는 폭발음의 공포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시민들이 고꾸라진 채였다고 덧붙였다.
한 20대 학생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해서 생각할 수도, (기자 당신의) 질문에도 답변하지 못할 지경"이라며 몸을 떨었다.
역사 곳곳에는 버려진 옷 가방도 널브러져 있었다. 피난 계획을 포기하고 대피소로 들어온 주민들의 흔적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러시아와 인접한 우크라이나 동부 대도시 하리코프에서도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폭발음에 주민들이 지하철역으로 대피하고 있다고 미국 CNN방송이 전했다.
차를 타고 피란길을 떠나려 했지만, 오히려 이동하다 화를 입지 않을까 두려워 지하로 피신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한 여성은 "오전 5시에 일어나니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더는 세상은 당신이 상상하던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우크라이나는 독립국이다. 러시아나 다른 나라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면서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 동부 크라마토르스크에 살다가 피란을 떠난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크라마토르스크는 동부 분쟁지역 도네츠크주 중심 도시다. 이 지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특별 군사작전'을 실시하겠다고 특정한 지역인데다 친러시아 반군이 공세를 퍼붓고 있는 만큼 주민들의 탈출 시도는 필사적이었다.
한 60대 여성은 시가지 전투를 목격하고는 중요한 서류, 옷가지, 스페어타이어만 챙겨 고향을 등졌다.
그와 남편은 친구 한 명과 함께 격전지가 된 거리를 차로 달려 곧장 고속도로로 향했다.
그는 "러시아가 침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믿지 못했다"면서 "어제 떠났어야 했다. 오늘에서야 나는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난다"고 말했다.
그는 차에 공간이 부족해 결국 반려견을 데려가지 못했다면서 "무비(반려견 이름)와 (마지막으로 안고서) 울었다"고 말했다.
서부로 향하는 고속도로에는 차량 수만 대가 한꺼번에 몰렸다.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우크라이나군 호송대가 통행 편의를 위해 여러 도로를 막은 탓에 정체는 더 심해졌다고 NYT는 전했다.
러시아군의 진격을 미리 피하겠다며 곡물 수확용 차량을 끌고 도로로 나온 농부도 포착됐다.
시내 현금인출기와 식료품점에는 긴 줄이 형성됐다. 주유소에도 차량 줄이 수백m까지 길어져, 연료를 얻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한 20대 피란민은 정부군 소속인 부친이 '당장 떠나라'고 전화를 걸어와 급하게 길을 나섰다며 "그 이후로는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pual07@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