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 합병 때 남쿠릴 4개 섬 문제로 주저할 때와는 다른 대응
아사히 "관계 강화 추진해온 대러 외교 근본적 재검토 필요해져"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일본 정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신속하게 러시아 추가 제재를 발표하면서 일본의 대(對)러시아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3일 러시아 국채 등의 일본 내 발행·유통을 금지하는 등의 첫 제재를 공개한 데 이어 25일에는 반도체를 포함한 수출규제 등 두 번째 제재를 내놨다.
미국 등 주요 7개국(G7)과 보조를 맞추는 형태이기는 하지만,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때와 비교하면 일본 정부의 결정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14년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실효 지배가 확인된 시점에 러시아 제재를 단행했지만, 일본은 당시 열흘 이상 관망했다.
일본이 내놓은 제재도 미국과 유럽이 단행한 에너지 관련 제재를 포함하지 않는 등 느슨한 것으로 평가됐다.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남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을 목표로 대러시아 관계 강화를 추진하던 상황이어서 러시아를 배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평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적국으로 맞서 싸운 러시아와 일본은 남쿠릴 4개 섬 영유권 다툼으로 아직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일본은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러시아가 실효 지배 중인 남쿠릴 4개 섬을 돌려받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일본은 미국, 유럽과 거의 동시에 두 차례에 걸쳐 러시아 제재를 발표했다.
처음 발표된 제재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두 번째 발표에는 ▲ 러시아 개인·단체에 대한 자산 동결과 비자 발급 정지 ▲ 러시아 금융기관 대상 자산동결 ▲ 반도체 등 범용품 러시아 수출규제 등 포함돼 G7과 보조를 맞추는 형태를 취했다.
아사히신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일본은 아베 내각에서 관계 강화를 추진해온 대러시아 외교의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해졌다"고 이날 진단했다.
작년 10월 취임한 기시다 총리도 남쿠릴 4개 섬 반환 협상을 염두에 둔 아베 내각의 러시아 정책을 계승한다는 방침이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특히, 일본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양 진출을 강화하는 중국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이 지난 19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G7 외교장관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정세와 관련해 "유럽의 안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면서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 등을 염두에 두는 듯한 발언을 했다.
게다가 일본은 자국이 실효 지배하는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를 놓고 중국과 영유권 분쟁 상태다.
아사히는 "국제질서를 힘으로 바꾸려는 (러시아의) 행동에 국제사회가 의연히 대응하고, (그 과정에서) 일본이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가. 그것은 중국에 대한 메시지도 된다"고 진단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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