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접한 폴란드 국경검문소에 피란민 북새통…현금인출 '러시'
"조국 지키러 간다" 키예프행 기차타는 우크라이나 시민들도
(프셰미실[폴란드]=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24일(현지시간) 새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뒤로 우크라이나와 맞닿은 폴란드 접경 도시 프셰미실에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물밀듯 밀려들고 있다.
프셰미실 중앙역과 메디카 국경검문소에 만들어진 임시 피란민 수용소에는 난민 1천200여명이 머물고 있으며, 숙소는 동이 났고 은행 앞엔 줄이 길게 이어졌다.
메디카 검문소는 걸어서도 국경을 넘을 수 있어 전쟁을 피하려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탈출구가 됐다.
전쟁이 난 지 이틀째인 25일 오전 프셰미실 중앙역 대합실에 전날 밤 설치된 임시 수용소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피란민들이 차가운 철제 침대 의자에 지치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거나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고국의 전쟁 피해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자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부 피란민은 화면을 보다가 충격적인 소식에 울음을 터뜨리거나 우크라이나에 남겨놓고 온 친지들과 전화하다가 하염없이 흐느꼈다.
전쟁을 모르는 어린아이들만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지원하러 온 폴란드 군인과 경찰, 자원봉사자들이 주는 간식을 받아 갔다.
프셰미실시는 피란민을 위한 안내창구와 응급 의료서비스를 시작했고 군경, 자원봉사자들은 이들에게 빵과 수프, 사과, 도넛, 물, 과자 등 식료품을 배급했다.
약속한 대로 폴란드는 이웃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피해 타국에 온 피란민들에게 동정심 어린 인도적 환대를 베푸는 모습이었다.
하루 한차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오는 열차는 이날도 연착됐다. 이제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오는 열차는 열차표가 없어도 수용 한계까지 승객을 태우기로 했다고 피란민들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서부 리비우에서 전날 두 아이와 버스를 타고 피란길에 올라 프셰미실 중앙역까지 온 크리스피나 씨는 이곳 임시 수용소에서 밤을 보냈다.
춥지 않았냐는 질문에 "두꺼운 점퍼를 입었고, 경찰이 담요를 줘서 괜찮았다"고 답했다.
그는 이탈리아에 있는 친척들에게 가는 게 최종 목표라고 했다.
임시수용소 한쪽 편에는 흐나디 씨 등 20∼30대 우크라이나 남성 네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이날 우크라이나 키예프행 열차에 타기 위해 키예프에서 오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일에서 일하다 조국으로 돌아가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돌아간다고 했다.
흐나디 씨는 "우크라이나군에 친구들이 있는데 상황이 아주 최악은 아니라고 들었다"면서 "우리 네 명은 모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현장을 둘러보던 보이치에흐 바쿤 프셰미실 시장은 "프셰미실 역에 설치된 임시수용소에 400명, 메디카 국경검문소에 800명 등 모두 1천200명의 피란민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10시간 넘는 여정을 거쳐 이곳까지 왔기에 우리는 빵과 수프, 따뜻한 물 등을 제공하면서 이들을 돌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목표는 접경도시로서 이들을 맞이해 폴란드의 다른 인근 도시로 원활히 보내는 것"이라며 "폴란드로 넘어올 피란민은 정부가 예측한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날 인구 6만명의 소도시 프셰미실 시내에 있는 호텔과 여인숙 등 숙소는 모두 동이 났다.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예약 가능한 숙소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전쟁이 나기 하루 전인 23일 우크라이나를 떠나 폴란드 국경검문소 인근 펜션에 묵고 있던 제나와 제이콥 씨는 전쟁이 "거대한 악몽 같다"고 입을 모았다.
제나 씨는 "키예프에서 리비우로 와서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하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사흘 전 집을 떠날 때만 하더라도 전쟁이 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이콥 씨은 "키예프까지 탱크가 진입해 승용차를 부수고 러시아군이 민간건물을 폭격해 아수라장이 됐다고 한다"면서 "특히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가 공격해 대응하는 것이라고 거짓말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시내 크레디아그리콜, 페카오 등 주요 은행에는 격화되는 전쟁에 현금을 찾으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섰다.
줄을 서 있던 한 폴란드 청년은 "현금 자동인출기에 돈이 떨어져 다들 창구에서 돈을 인출하고 있어서 은행 앞의 줄이 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경 넘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의 불안과 공포에 폴란드까지 전염된 셈이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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