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 도시서 사흘간 3천여명 체포…반전 온라인 청원에 78만명 몰려
경제 충격파에 자영업자 등 불만 고조…당국 "사형제 부활할 수도" 으름장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대한 공세를 높여가는 가운데 러시아 내에서는 반전을 외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고 AP통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4일부터 이날까지 사흘 연속 반전 시위가 일어났다.
전날까지 이틀간 2천500명 넘는 시위 참가자가 체포됐지만, 이날도 수도 모스크바와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이어졌다.
정치범 체포를 감시하는 러시아 비정부기구(NGO) 'OVD-인포'의 트위터에 따르면 이날 34개 도시에서 적어도 492명의 반전 시위 참가자가 체포됐다. 이 가운데 모스크바에서 체포된 사람은 절반가량이다.
지난 사흘간 러시아 전역에서 반전 시위로 체포된 사람은 3천93명으로 3천명이 넘었다.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는 각계의 공개서한도 쏟아졌다.
이날 6천명 넘는 의료계 종사자들이 서한에 이름을 올렸으며 건축가와 엔지니어 3천400명, 교사 500명도 각각 서한에 서명했다.
언론인과 지방의회 의원, 문화계 인사와 다른 직능 단체도 지난 24일 이후 비슷한 서한을 내놓고 있다.
모스크바에 있는 유명 현대 미술관 '개러지'는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끝날 때까지 전시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반전 여론은 온라인에서도 결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멈추라는 온라인 청원에는 24일 오전부터 이날 저녁까지 78만명이 서명했다.
심지어 러시아의 침공에 앞서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반군이 장악한 2개 지역의 독립을 승인하는데 표를 던졌던 일부 의회 의원도 침공을 비난하고 나섰다. 보통 크렘린궁의 입장을 따르는 공산당 의원 2명도 소셜미디어에서 '즉각적인 전쟁 중단'을 요구했다.
러시아 당국은 이 같은 반전 움직임에 더욱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러시아가 1996년 이후 유예하고 있는 사형 제도를 되살릴 수 있다고 경고해 러시아 내 인권 활동가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 회원인 에바 메르카체바는 '재앙'이라면서 "중세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러시아 언론 규제 당국은 자국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침공', '선전포고' 등으로 표현하거나 우크라 민간인 사망을 다룬 독립언론들의 보도를 삭제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러시아의 인터넷 이용자들은 이날 페이스북과 트위터 접속 장애를 호소했다. 이들 소셜미디어는 지난 수년간 러시아에서 정권에 비판적인 여론을 증폭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인들이 갑작스럽게 닥친 전쟁의 경제적 영향에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급락하고, 현금 수요는 급증하는 등 러시아 경제는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루블화는 몇 주 전만 해도 달러당 74루블 수준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달러당 84루블 안팎에서 거래됐고, 현금 수요는 58배나 늘었다. 전문가들은 물가 급등과 자본 유출, 성장 둔화를 경고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뷰티살롱 체인을 소유한 라랴 사디코바는 "푸틴이 위대하다고 소리치던 사람들도 이제는 전만큼 크게 외치지 않는다"면서 "그들은 급격한 가격 변동과 공급업체들의 운송 중단 등에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대형 전자 소매업체 DNS의 드미트리 알렉세예프 최고경영자(CEO)는 페이스북에서 공급망 문제로 가격을 30% 인상한다면서 "러시아가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소셜미디어에는 소매업체들이 가격표를 바꾸거나 뗀 사진이 잇따라 올라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아나스타샤 마라노바는 예약 취소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모두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다리고 있다"면서 "나라 전체가 멈춘 것 같다"고 걱정했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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