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등 자원부국 제재로 효과 확인됐으나 '양날의 칼'
유럽행 가스 40% 러시아산…서방, 경제충격·정치역풍 우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서방이 전방위로 러시아에 제재를 강화하지만 러시아의 주력 산업인 에너지를 직접 제재할지는 미지수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경제·금융·기술 분야를 제재했다.
이 같은 공세 때문에 러시아 경제는 뚜렷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추산된다.
영국 컨설팅사 캐피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현재까지 발표된 제재로 올해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약 1∼2% 포인트(200억∼350억 달러가량)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제재 대상이 되면 러시아의 손실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이들 자원은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무려 2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산업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이 같은 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간 이란과 같은 자원부국에 대한 제재 경험으로 그 효과를 확인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는 2018년 이란핵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해 이란의 원유와 가스 수출을 원천 차단하는 제재를 강행했다.
이란은 그 여파로 원유 수출 규모가 전년 대비 80%까지 줄어드는 경제적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에너지를 제재하는 것은 서방에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양날의 칼'로 인식된다.
러시아는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으로 전 세계 원유의 12%, 천연가스의 17%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가즈프롬이나 로스네프트 등 러시아 국영 에너지 회사가 자원 무기화의 첨병이라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의 비율이다.
서방국가들은 러시아발 에너지가 줄어들면 공급 부족과 물가상승 때문에 가계와 기업이 고통받을 것으로 우려한다.
특히 유럽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천연가스 40%를 러시아에서 수입해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지난해 러시아가 유럽에 석유·가스 약 1천억달러(약 120조원)어치 수출한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은 러시아산 가스가 막히면 EU는 향후 몇 개월 동안은 비축분과 대체 공급원으로 겨울을 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유라시안그룹은 다음 겨울을 대비해 봄, 여름에 에너지 재고분을 보충해야 하는데 그 때문에 이미 상승한 에너지 가격이 계속 높은 수준으로 유지돼 인플레이션이 악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현 상황에서 에너지 제재는 진전하기 힘들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메건 오설리번 에너지지정학 연구소장은 WSJ 인터뷰에서 "유럽과 러시아가 맺은 깊은 에너지 관계, 그리고 전 세계 석유 시장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상당한 위치 때문에 제재가 더 강경해지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럽만큼 의존도가 높지는 않지만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 등 수입을 늘려오고 있던 참이었다.
미국 정유사들은 미국 정부가 2019년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의 주요 자금원인 원유 수출을 제재하자 러시아로 눈을 돌렸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이 들여온 러시아산 원유는 하루 평균 20만 배럴 정도로 2020년보다 3배가량 증가했다.
전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이 클 것이라는 우려도 서방이 에너지 제재를 신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소비자들이 고유가에 시달리면 각국 정권이 정치적으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국제유가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로 인해 급등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지난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소식에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다만 미국 정부의 대러시아 제재패키지에서 에너지 분야가 빠지면서 다시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최근 미국 정부는 자국과 동맹국이 겪을 이런 '부메랑 효과' 때문에 러시아산 원유는 제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원유의 급격한 수급 불균형 우려 속에 미국, 일본, 호주 등 주요 석유 소비국은 전략비축유 방출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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