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와티니서 시술 재미교포 의사 "방북 진료 계기 의술 베푸는 삶의 재미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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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줄위니[에스와티니]=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북한서부터 남아프리카 에스와티니까지 무료로 의술을 베푸는 삶의 재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에스와티니 수도권 신도시 에줄위니에서 처음 만난 재미교포 산부인과 의사 노명재(78) 박사의 말이다. 노 박사는 이날 환자 2명의 자궁내막증과 자궁경부암 등 때문에 절제 시술을 하고 왔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조금 힘에 부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뚫고 지난 1월 10일 에스와티니에 입국해 두 달간 일정으로 만카야네 정부병원 등에서 자궁경부암 등 크고 작은 산부인과 시술을 100건 정도 했다.
그는 에스와티니에서 만연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때문에 HPV(인간 유두종바이러스)로 인한 자궁경부암의 발병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에이즈 환자의 면역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다 보니 자궁경부암이 보통의 경우 조직변화가 10∼20년만에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 2, 3년 만에 급속히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선 제대로 된 방사선 및 화학 치료 시설도 없어 많은 환자가 의술이 좀더 발달한 이웃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후송되는 민관 펀드 지원을 기다리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전에 한국서도 자궁경부암이 많았지만 펩시미어 정기 검사 덕분에 미국의 경우처럼 이제는 과거처럼 많이 찾아볼 수 없게 됐다면서 백신 접종과 함께 미리 검사만 제대로 하면 예방할 수 있는 부인과 질환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궁경부암 검사를 위한 질확대경, 휴대용 초음파 도구 등을 들고 다니면서 거의 전부 자비로 봉사를 하고 있다.
그에게 이런 봉사를 노년에도 계속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2004∼2014년 해마다 일주일간 북한을 방문해서 봉사한 게 큰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의 한인 기독교 선교단체인 만나선교회의 일원으로 북한 함경북도 라진 선봉 지구를 방문해 산부인과 진료를 하고 현지 의사들을 교육했다. 만나선교회는 이곳에 북한 의사 50∼70명이 근무하는 신흥종합병원도 지었다.
37년간 개업의로 일한 그는 오히려 이 과정에서 "무료치료 맛이 좋다 보니 봉사를 계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에서 전기가 나가 플래시 불을 켜서 수술 부위를 닫은 적이 있다"면서 "에스와티니에서도 하루는 물이 안 나와 수술에 지장을 받은 적은 있지만 북한 형편이 아프리카보다 더 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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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프리카로 오게 된 계기와 관련, 한 33세 한인 여성 간호박사가 에스와티니 의료봉사에 헌신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면서 '여기야말로 내가 진짜 필요한 곳이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로 약 4천500명의 아이를 받아냈다. 공식적으로는 2013년 산부인과에서 은퇴했지만 2014년 이후 계속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2015년부터 두 달씩 에스와티니에 와서 봉사를 하다가 2017년에는 아예 40피트 규격 컨테이너에 짐을 싸서 부인과 함께 와 2년 동안 현지에 살면서 진료했다.
그는 "앞으로도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는 한 계속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노는 게 건강한 비법이라면서 오전 5, 6시 산책을 꾸준히 하고 여가도 잘 활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1969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도미했다가 미 해군 병원에 중위로 징집돼 군의관으로 복무하고 이후에도 육군까지 포함해 예비역 군의관 생활만 28년을 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 공격을 우려해 때론 방독면을 쓴 채 미 여군 3만 명을 상대로 진료에 임하기도 했다.
개업의 생활에 '번아웃'(소진) 돼 2001년 한국에 와 용산 미군기지에서 2년 동안 현역 군의관(중령)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봉사로 와 있는 동안에도 시간을 정해 시애틀 집의 부인과 통화를 한다.
26일에는 에스와티니 현지 한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6.25 전쟁 때 7살의 나이로 파괴된 한강철교를 건넜던 경험담 등을 생생히 들려줬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의사의 꿈을 키운 그의 섬김의 삶은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진행형이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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