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크라 국경에선] 걸어서라도…점점 불어나는 피란행렬

입력 2022-03-02 09:46   수정 2022-03-0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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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크라 국경에선] 걸어서라도…점점 불어나는 피란행렬
전쟁 격렬해져 폴란드로만 38만명 유입…준비된 수용시설 이미 포화


(부도미에시·코르쵸바[폴란드]=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어머니, 여기예요. 여기"
한 남성이 급히 차에서 내리더니 국경 검문소를 통과해 큰 여행 가방을 끌고 걸어오는 노파에게 달려가 힘껏 끌어안았다.
노파와 남성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옆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기자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남성이 몰고 온 차엔 독일 번호판이 달려있었다.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은 어머니를 마중하고자 독일에서 달려온 것이었다.
이 남성은 "어머니를 무사히 다시 만나게 돼 너무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와 접한 폴란드 부도미에시 국경검문소 앞은 눈물겨운 상봉의 현장이었다.
부도미에시 검문소는 원래 차량 통과만 허용되지만 지난달 26일부터 걸어서도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허용됐다.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의 입국을 위해 접경지역 검문소 8곳 모두 차량·도보 통과를 허용했다.
폴란드 국경쪽으로 피란 차량이 몰리면서 도로가 극심한 정체를 빚자 차라리 걸어서 탈출하려는 우크라이나인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영상 2∼3도의 쌀쌀한 날씨 속에 검문소 밖에는 우크라이나에서 건너오는 가족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검문소 주변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빠져나온 가족과 만난 이들의 웃음소리와 눈물이 뒤섞였다.
러시아군이 키예프와 함께 주요 공격 표적으로 삼은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리코프에서 어렵게 빠져나온 친지를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여성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동쪽 끝 하리코프에서 서쪽 끝 부도미에시 검문소까지는 찻길로 1천100㎞ 떨어졌다.
검문소에서 약 500m 떨어진 공터에는 국경을 넘은 피란민의 쉼터가 새로 마련됐고 그곳에서 2∼3㎞ 더 가면 임시수용시설 있다.


폴란드 동부의 국경 마을 부도미에시는 외진 곳인데다 우크라이나 쪽에서도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 않아 평소에는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지만 비상 상황인지라 당국도 만반의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쉼터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는 "러시아군이 민간거주지역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부도미에시 검문소를 통과하는 우크라이나인 수가 서서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 국경도시 프셰미실과 가까운 메디카와 코르쵸바 국경검문소 쪽은 급증하는 피란민들로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특히 80만 인구의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우와 연결되는 코르쵸바는 가장 붐비는 국경 지역 가운데 하나다.

전쟁 발발 초기 수많은 피란 차량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검문소 앞 도로가 점거되다시피 했다고 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수많은 피란민이 검문소 앞 도로에 차를 세워둔 채 새우잠을 자는 이른바 '차숙'을 강행하자 폴란드 당국은 부랴부랴 검문소 인근 대형마트 내부를 싹 비우고 임시 수용시설을 마련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유입되는 피란민 수가 급증하면서 시설 내 여유 공간도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이날도 시시각각 대형 버스가 피란민을 실어날라 입구 앞은 북새통을 이뤘다.
등록 대기 시간이 길어지며 밖에서 입김으로 손을 녹이며 추위에 떠는 아이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주폴란드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이날 폴란드 내무부가 중간 집계한 피란민 수는 누적 37만7천400여 명에 달한다. 전날에도 폴란드에만 10만 명 이상의 피란민이 유입됐다.



전쟁 발발 직후 피란민을 받기 시작한 프셰미실의 경우 이미 수용 능력이 한계점에 이르러 추가로 들어오는 피란들을 다른 도시로 이송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대사관 관계자는 "피란민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현재의 전황을 고려할 때 당분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u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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