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지원 끊기고 논문 게재도 배제…양심적 과학자 '억울' vs. 침공비난 '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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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 과학계도 규탄 성명 차원을 넘어 러시아에 대한 연구비 지원을 끊거나 협력 관계를 중단하고 러시아 연구원의 참여를 배제하는 등의 조처에 나서고 있다.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의 온라인 매체(nature.com)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 이후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에서 라트비아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의 과학원과 단체들이 러시아의 침공을 강력히 비난하고 우크라이나 과학자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성명을 내고 있다.
이런 성명은 단순한 규탄이나 항의를 넘어 실질적 조처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연구재단(DFG) 등이 참여하는 독일 최대의 연구비 지원 단체인 '독일 과학기구동맹'은 지난 25일 러시아와의 모든 과학적 협력을 동결하는 조처를 했다.
이 단체는 성명을 통해 더는 연구비 지원이나 공동행사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협력도 시작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도 '스콜텍'(Skoltech)이라는 과학기술연구소를 공동 설립한 러시아 비영리기구 스콜코보재단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함께 일해온 러시아 동료들의 특별한 기여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어 심히 유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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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당국도 정부 차원에서 러시아가 혜택을 받는 연구비 지원에 대해 긴급 점검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비 지원 중단뿐만 아니라 러시아 관련 학술행사나 논문도 차단되고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7월에 열릴 예정이던 '세계수학자대회'(ICM)는 각국 학회와 100여명이 넘는 초청 연사들의 압력으로 온라인으로만 여는 것으로 바뀌었다.
또 '분자구조 저널'(Journal of Molecular Structure)을 비롯해 적어도 한 곳 이상의 학술지 편집위원회가 러시아 연구기관 소속 과학자들이 저술한 논문을 게재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움직임은 우크라이나 과학자들이 러시아와의 과학 프로그램을 전면 동결해 줄 것을 적극적으로 촉구하면서 더 가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젊은 과학자 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과학자 130여명은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유럽집행위원회에 보낸 공개서한을 보내 러시아 연구기관에 대한 연구비 지원과 협력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타라스 셰브첸코 국립대학의 물리학자 막심 스트리카는 "러시아 과학계에 대한 완벽한 보이콧이 이뤄져야 하며 어떤 협력도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러시아 과학계는 (블라디미르) 푸틴을 지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서방 학술지에 러시아 과학자의 논문이 게재되는 것은 물론 러시아 연구기관 소속 과학자가 국제 연구팀에 참여하는 것도 배제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 과학자들이 모두 푸틴 대통령의 침략행위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과학자 5천여명이 서명한 서한은 적대적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면서 러시아 지도부가 '지정학적 야망'을 위해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을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이 서한에는 러시아 내 연구를 관장하는 정부 조직인 러시아 과학원 회원 80여명이 동참했다.
러시아 과학자 공동 서한을 주도한 스콜텍 생명과학센터 강사 미하일 겔판드는 "누구도 직접적인 침공까지 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키예프를 공격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면서 포괄적 제재가 전쟁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일반 과학자에게 해를 주지 않는 길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일에 있는 옛 제자가 아직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상사로부터 러시아 과학자와 접촉하지 말라는 강력한 권고를 받았다"면서 "이런 일이 많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과학자 중 일부는 러시아 과학자들의 양심적 행동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면서도 지금까지 행동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 고등기관 과학원'은 공개서한을 통해 러시아 연구기관들은 침략 행위를 비난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기관에 소속된 과학자는 국제연구팀에 받아주지 말고, 국제회의에도 초청하지 않아야 하며 주요 저널에서도 배제돼야 한다"고 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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