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우크라를 베를린장벽으로 만드나"…유럽 비판은 자제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우크라이나 사태의 불똥이 튈까 '냉가슴'을 앓고 있는 중국이 관영 매체를 통해 미국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으로선 러시아가 미국에 맞서기 위한 최대의 협력 파트너이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국제사회의 십자포화를 받고 있는 러시아를 명시적으로 지지했다가는 유탄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매체들을 통해 미국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사태가 미국·유럽 대(對) 중·러 중심의 신 냉전 고착화로 연결되는 것을 피하고, 서구 진영 내에서 미국과 유럽을 분리해 대응하려는 중국의 의중이 관영매체 보도 속에 드러나는 양상이다.
관영 영자지인 차이나데일리는 3일자 사설에서 "우크라이나에서의 현재 위기는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충돌한 결과이며, 사태를 악화시키고 불에 기름을 부어 이익을 챙기려는 것은 미국"이라고 썼다.
사설은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이 다시 끄집어내고 소금을 친 냉전의 상처"라며 "국제사회, 특히 유럽 국가들은 과거의 편견에서 벗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대외 강경 기조를 대변해온 관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는 같은 날 사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힘의 장벽'에 봉착했다고 일갈한 데 대해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을 연상케 한다"며 "워싱턴이 우크라이나를 그 높은 장벽으로 만들길 희망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사설은 이어 "이런 식의 유도는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심지어 매우 위험하다"며 "앞으로 세계를 또 다른 냉전, 더 나아가 대규모 열전으로 끌고 가려는 조짐을 고도로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환구시보는 전날 기명 칼럼을 통해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주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의 미국 비판 보도는 국제사회에서 '침략국'으로 낙인찍힌 러시아의 최대 협력 파트너인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하기 어려운 말을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중국은 표면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있지만 러시아 규탄 관련 유엔 표결에서 잇달아 기권을 택하고, 제재에 반대하는 중국에 국제사회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기 힘들게 된 중국 정부는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한편 관영매체 보도를 통해 미국의 책임을 지적하면서 신냉전 대립구도 고착화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러시아와 각을 세우는 서방 진영 중에서 유럽에 대한 비난은 자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보이는 가운데,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유럽연합에 대한 비판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는 당분간 어떤 상황에서든 전략경쟁에 따른 갈등이 불가피하다고 보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유럽과의 관계가 더 악화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이 중국의 인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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