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이어 자포리자 원전도 점령
"우크라 핵무장 방지 명분 쌓으며 전력차단 등 전략적 실리 추구"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4일(현지시간) 체르노빌에 이어 유럽 최대급 원자력 발전소로 알려진 자포리자 원전을 장악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내 다른 기간시설보다 원전에 우선 달려드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주요 외신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우크라이나의 핵무장 시도를 막기 위해 군사적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명분 쌓기 측면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작전을 명령하면서 우크라이나 내 극단세력이 핵무기를 보유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같은 달 21일 대국민 담화에서도 우크라이나가 자체 핵무장을 추진하려 하고 있으며, 미국도 우크라이나 영토에 무기를 배치할 계획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주요 원전에 대한 장악에 나선 것은 그저 중요한 사회기반시설이어서만은 아니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두 번째로는 자포리자 원전 자체의 전략적 가치를 고려해 볼 수 있다
미국 CNN 방송은 3일 '왜 해당 원전이 공격받나' 제하의 기사에서 인근 강을 봉쇄해 우크라이나군을 포위하려는 러시아군의 전략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원전을 손에 넣을 필요성이 제기됐을 수 있다는 미군 퇴역장성 웨슬리 클라크의 분석을 전했다.
클라크는 "이 원전은 우크라이나 전력 공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전략 자산이기도 하다"면서 "만약 작동을 중단시킨다면 최소한 일시적으로 전력공급망이 불안정해지고, 이는 통신 등 많은 분야에서 우크라이나의 능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포리자 원전은 우크라이나 내 전력 공급의 4분의 1을 담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 러시아군은 왜 굳이 한참 전에 가동을 멈춘 체르노빌 원전을 지난달 24일 점령했을까.
이 역시 명분 쌓기와 전략적 실익 챙기기라는 두 가지 목적이 모두 고려된 행동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체르노빌은 러시아의 진격 경로상에 있다.
체르노빌 자체는 방사능에 오염된 황무지와 폐허에 불과하지만, 벨라루스에 배치됐던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키예프)로 향하는 최단거리상에 위치해 있다.
벨라루스 국경에서 체르노빌까지의 거리는 약 16㎞에 불과하고 체르노빌과 키이우는 약 128㎞ 떨어져 있다.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을 지낸 미군 퇴역장성 벤 호지스는 최근 미국 NBC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체르노빌은 러시아군이 북쪽으로부터 키이우를 공격하러 가는 길 중간에 있다. 거의 길을 막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이날 자포리자 원전 단지에 포격을 가해 화재를 발생시킬 정도로 아찔한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해선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온다.
애덤 시프 미국 하원 정보위원장은 MSNBC 방송에서 어떤 판단으로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방사성 물질 유출 위험을 감수하며 원전을 공격하는 행위는 푸틴 대통령을 더욱 고립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그(푸틴)가 정신이상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러시아의 전쟁계획에 원전에 대한 공격이 올라 있지 않길 희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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