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기술이 없다면 눈치라도…K-외교에 필요한 것은

입력 2022-03-06 07:07  

[특파원시선] 기술이 없다면 눈치라도…K-외교에 필요한 것은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당일 이스라엘의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는 러시아를 비난하지 못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과 함께 대화를 촉구한 것이 전부였다.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 총리가 러시아에 대해 언급하지 못한 것은 국익 때문이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적국 시리아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러시아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현명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을 향해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러시아 비난이라는 총대는 총리 대신 각료 중 한 사람이 멨다.
야이르 라피드 외무장관은 별도의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같은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을 '섬세한 균형외교'라고 높이 평가했다.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가 외교의 기술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이 반드시 특별한 지혜나 외교적 능력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만은 없는 것 같다.
남미 국가인 브라질이 좋은 예다.
자이르 보우소나르 브라질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해 입을 닫았지만, 아미우톤 모우랑 부통령이 "러시아 침략에 동의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냈다.
러시아라는 강대국을 직접 비난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국제사회의 눈치도 봐야 하는 국가의 공복이라면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역할분담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어땠을까.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협력에 관한 장관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는 유럽연합(EU)과 올해 상반기 EU 의장국인 프랑스가 EU와 인도·태평양 역내 주요국을 초청해 개최한 행사로, 50여 개국이 참석했다.
전운이 감도는 상황이었던 만큼 당연히 우크라이나 문제가 거론됐다고 한다. 공개 발언은 없었지만 비공개회의에서 한 EU 인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러시아를 비난하는 등 러시아에 대한 비판 분위기가 고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은 양자회담에서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대화로 평화롭게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론만 반복했다는 것이 외교 당국자의 전언이다.
게다가 이 당국자는 파리에서 한국 특파원들을 만나 러시아 독자 제재 가능성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이는 청와대가 미국이 첫 대러시아 제재 조처를 발표한 직후에도 당장 행동에 나서는데 다소 신중한 분위기였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한반도 평화 정책이나 국내 기업의 러시아 거래에 미치는 영향 등 국익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내놨을 수 있다.
하지만 외교 당국자까지 나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었다.
이 당국자가 파리에서 이 발언을 할 당시 유럽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장감으로 뒤엎힌 상황이었다.
앞장서서 러시아를 비판하진 못한다고 하더라도, 앞마당에서 전쟁이 날 가능성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유럽 현지에서 국제사회 주요 국가들과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스라엘 외무부처럼 섬세한 균형외교 실력을 발휘하진 못하더라도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눈치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다.
kom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