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직접 비난 삼가, 침공에도 '중립적'…유엔의 규탄 결의안도 무더기 기권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만 2주를 넘긴 가운데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아프리카의 시각에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최근 유엔 총회에서 140개국이 넘는 나라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러시아의 즉각적 철군을 촉구한 결의안에 찬성한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한 아프리카 16개국은 35개 기권 국가에 포함됐다. 아프리카 7개국은 아예 투표에 참여도 안 했고, 아프리카의 북한으로 불리는 에리트레아는 반대표를 던졌다.
이런 가운데 55개 회원국을 둔 아프리카연합(AU)의 올해 의장인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은 지난 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우크라이나의 휴전 유지를 촉구했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AU도 침공 당일인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여기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언급은 없고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 비난도 삼갔다.
앞서 아프리카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하나인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도 지난 7일 대국민 서한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이라 부르지 않고 그냥 '충돌'로 표현했다.
그는 유엔 총회에서 남아공이 기권한 것과 관련, "남아공이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섰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이에 대해 해명했다. 유엔 결의안이 이미 시작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대화 노력에 대한 충분한 지지 표명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소 궁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주남아공 우크라이나 대사도 남아공의 기권에 대해 지역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민주주의 절차의 본보기라 할 수 있는 남아공답지 않은 것이어서 당황스러웠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래도 라마포사 대통령은 10일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우크라이나 사태의 정치적 및 외교적 해결을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물론 남아공이나 아프리카가 러시아에 대해 직접적 비판을 하지 않는 이유는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냉전 당시 아프리카는 외교적으로 구소련의 지원을 받았고 여러 아프리카 정치 지도자들이 러시아에서 교육을 받았다. 또 최근 몇 년 새 러시아 용병 및 무기 지원도 이뤄졌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도 러시아는 자국산 백신 등을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 지원하고 나섰다.
하지만 글로벌 여론전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엔 총회 결의안의 압도적 통과가 보여주듯 규탄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작금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원전 단지 주변을 공격하고 산부인과 병원까지 무차별 폭격하는 것도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아프리카는 유럽의 식민지 경험에다 쿠데타로 얼룩진 근현대사가 있다.
주권과 영토 보전은 아프리카에도 강 건너 불구경만은 아니다.
쿠데타가 한 국가 내에서 정당한 수단이 아니라 무력으로 권력을 강탈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비난받는다면 무력으로 이웃 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유린하는 침공 역시 마찬가지다.
AU는 2030년까지 아프리카에서 무력충돌을 없애겠다는 이른바 '총을 침묵하게 만들기' 캠페인을 대륙 차원에서 야심 차게 펼치고 있다.
이 점에서라도 당연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 아프리카가 할 말을 분명히 해야 했다고 본다.
그것이 아프리카 대륙이 열강의 지정학적 경쟁의 대상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평화를 일궈나가는 태도이다. 무조건 중립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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