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숙 "'정적의 파편'은 운명같은 곡…韓예술성 5천년 핏속에"

입력 2022-03-15 12:19   수정 2022-03-15 12:22

진은숙 "'정적의 파편'은 운명같은 곡…韓예술성 5천년 핏속에"
뉴욕 초연 맞아 인터뷰…"젊은 세대 서포트 위해 통영음악제 감독 수락"
러시아 음악가 보이콧엔 "푸틴 부역자 배제해야 하지만 전부 마녀사냥은 안돼"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대단한 우연이기도 하고, 뭔가 운명의 만남 같은 느낌이죠."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카네기홀에서 자신의 두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 '정적의 파편'을 무대에 올린 작곡가 진은숙은 이 곡을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의 '운명'이라고 규정했다.
현대음악 대가인 진은숙은 뉴욕한국문화원 후원으로 열린 공연에 앞서 연합뉴스 등 일부 특파원과 인터뷰를 하고 협주곡은 악기당 한 곡씩만 만든다는 자신만의 작곡 원칙까지 깨면서 카바코스를 위해 이번 작품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카바코스의 완벽한 연주에 매료된 진은숙은 2017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아시아 투어에 동행하면서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로부터 '작품을 하나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자 "카바코스가 연주한다면 바이올린 콘체르토 2번을 쓸 의향이 있다"며 속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이심전심이었을까. 공교롭게도 카바코스 역시 '당신이 연주해야 진은숙이 작곡한다'는 래틀의 전화를 받기 하루 전 유튜브에서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접하고 '언젠간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작년 초로 예정됐던 '정적의 파편' 초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탓에 올해 1월로 늦춰졌지만, 작곡가와 연주자 모두 시간을 벌 수 있었다며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의 도움을 받아 결과적으로 모든 상황이 좋게 된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영국 런던에서 세계 초연을, 보스턴에서 미국 초연을 각각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현대 예술의 중심인 뉴욕에서 처음 공연하는 의미는 작지 않다.
진은숙은 "뉴욕 방문은 3년 만이다. 카네기홀에서 하는 만큼 뉴욕 초연도 중요하다"라며 "이번에 와 보니 (코로나19 사태 탓에) 뉴욕이 예전보다 훨씬 한산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카네기홀 스턴오디토리엄에서 카바코스와 보스턴 심포니의 협연으로 펼쳐진 '정적의 파편' 공연이 끝나자 객석 여기저기서 '브라보'라는 함성이 터져나왔고, 20∼30명의 관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진은숙도 무대에 올라 보스턴 심포니 지휘자인 안드리스 넬손스와 카바코스의 손을 잡고 환호에 답했다. 커튼콜은 세 차례나 이어졌다.

이제 고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진은숙의 시선은 온통 20주년을 맞은 통영국제음악제에 쏠려있다.
올해부터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은 진은숙은 "제의를 받았을 때 한참을 망설였다. 1년쯤 생각하다가 예전 서울시향에서 했던 것처럼 젊은 세대를 키워주고 서포트하는 일을 계속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공을 들인 '해리 파치 앙상블' 참가가 막판 불발되기는 했지만,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계획대로 진행된다.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에 대해 진은숙은 "인구 대비로 보면 중국, 일본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배출되는 음악가, 작곡가가 많다"며 "음악적 역량이 너무 대단하다. 한국인들의 예술가적 기질이라는 게 5천년 핏속에 있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한국 음악인들이 인종차별을 겪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전쟁, 독재 등 긴 세월 혼란을 겪은 한국인들은 아직 불필요하게 자신을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어 자존감이 강한 서양인들을 상대하기 쉽지 않다"면서 "그들이 '날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생각을 똑같이 이야기하면 된다. 우리 자신을 조그맣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음악가들이 서방에서 배척받는 현상에서는 '친(親)푸틴' 부역자와 일반 러시아 음악가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은숙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가깝고 그의 도움을 받아 음악계의 권력을 잡은 사람이 몇 명 있다. 그들은 당연히 지탄받아야 하고 무대에 세우지 말아야 한다"라면서도 "그런데 러시아 음악가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연주를 못 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 일종의 파시즘"이라고 비판했다.
일부에서는 차이코프스키와 같은 러시아 작곡가의 곡도 연주하지 말자는 주장을 내놓지만 이는 나치의 전쟁범죄를 이유로 베토벤의 곡을 보이콧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그는 "뭉뚱그려서 마녀사냥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통영국제음악제에도 율리아 네즈네바라는 성악가가 오는데 그는 사할린에서 온 소수민족으로 국적만 러시아이지 푸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소개했다.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독일 함부르크 음악대학에서 헝가리 출신 작곡가 죄르지 리게팅의 가르침을 받은 진은숙은 2004년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작곡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 상을 받았고 아놀드 쇤베르크 상, 비후리 시벨리우스 음악상, 뉴욕 필하모닉 크라비스 음악상, 레오니 소닝 음악상을 휩쓸었다.
firstcircl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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