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항의 선상 반란…소련 핵잠수함 충돌 등 역사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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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반세기 동안 태평양에서 맹활약한 미 해군 마지막 재래식 항공모함 '키티호크'호가 최후의 여정을 떠났다고 CNN 방송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키티호크호는 해체를 위해 미 서부 워싱턴주에서 남부 텍사스주로 약 2만5천㎞를 항해하고 있다.
워싱턴과 텍사스는 육로로는 2천500㎞ 정도 떨어져 있지만 바다로 항해하려면 남미 대륙을 밑으로 우회해서 건너야 한다.
배수량 8만5천t, 길이 304m, 최대 폭 85m의 큰 덩치 탓에 파나마 운하도 통과할 수 없어 항해 거리는 더 길어졌다.
키티호크호는 텍사스의 선박 해체 업체가 '1센트'에 사들였다. 업체는 초장거리 운송·해체·처리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고철값을 챙길 수 있다.
1960년 취역한 키티호크는 전투기·헬리콥터 등 85대와 승조원 5천여명을 태울 수 있는 규모를 자랑했다.
2009년 5월 퇴역할 때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활발하게 누볐는데, 특히 베트남전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다. '양키 스테이션'이라고 불린 이 항모에서 하루 100대 이상의 전투기 등이 키티호크에서 출격했다고 CNN은 전했다.
키티호크는 베트남전 말기인 1972년 10월 12일 '함상 반란' 사건으로도 유명세를 치렀다.
흑인 승조원들은 계급이 같아도 청소 등 잡일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인종간 다툼이 있어도 늘 약자가 되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 흑인 승조원들이 들고일어나 이틀간 주먹싸움이 벌어져 총 47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가담자 중 재판에 넘겨진 26명이 모두 흑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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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이후 다른 함정에까지 인종갈등이 퍼져나갈 조짐을 보이자 당시 해군 참모총장이던 엘로 줌월트 대장이 인사와 근무 등에서 인종차별을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하며 해군 복무규정을 개정하기도 했다.
1984년에는 대한해협에서 구소련 핵잠수함과 충돌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사고로 인해 핵잠수함의 선체가 일부 파손됐다. 잠수함에서 떨어져나온 스크루가 키티호크호의 선체에 박혀 있었다고 한다.
키티호크호는 한국과의 인연도 두텁다. 1979년 10월 26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키티호크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비, 한국 근해에 급파됐다.
키티호크호는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인 '팀스피릿 훈련'에도 자주 참가했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는 일본 요코스카(橫須賀)를 모항으로 하는 7함대에 전진 배치됐었다.
영광의 시대를 마무리한 후 박물관으로 개조하는 방안이 거론됐으나 결국 고철로 해체되는 길을 걷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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