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폴리티코, 식량가격 폭등·기아공포 증가·식량보호주의 확산 등 지적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세계 식량시장의 강자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4주째 접어들면서 세계 식량 시스템에 미치는 충격파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이들 국가가 식량 공급망에서 사라지면서 세계가 그 여파를 느끼고 있다며 전쟁이 세계 식량시장을 뒤흔드는 5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우크라이나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빈곤국에 공급하는 식량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고, 세계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해바라기씨 기름은 절반 이상을 유럽연합(EU)에 수출한다. 또 러시아와 함께 세계 밀 수출의 29% 차지하는 곡물 대국이다.
폴리티코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양국의 농산물 수출 중단과 식품 가격 폭등, 기아 공포 증가, 식량 보호주의 확산, 친환경 농업 전환 차질, 해바라기씨 기름 공급 중단 여파 등으로 세계 식량시장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이어 유럽 등 부유한 서방 국가들은 이런 영향을 견딜 수 있겠지만,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 이미 가뭄으로 큰 타격을 받은 개발도상국은 식량 위기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식량 가격 폭등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되는 밀, 옥수수, 해바리기씨 기름 등이 흑해 항구를 통해 수출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수출 중단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곡물과 기름용 유지작물 가격은 이미 기록적인 수준으로 오른 상태다.
키이우(키예프) 경제대학 올레그 니비에프스키 교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 지역의 수출 중단이 2년 정도 지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U는 옥수수 수입의 절반 이상과 밀 수입의 5분의 1, 식물성 기름 수입의 4분의 1을 우크라이나에 의존하고, 비료는 러시아에서 30%를 수입한다.
전쟁으로 인한 곡물 공급 부족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1년 전보다 가격이 142%나 오른 비료로 인해 부담이 부쩍 증가한 EU 식품 업계와 농업계에 비용 상승 요인으로 작용, 식량 가격 인상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 기아 공포 = 곡물 가격 폭등으로 세계 빈곤국의 식량 확보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당장 위기에 직면한 나라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이집트와 튀니지, 알제리, 레바논, 터키 등이다. 알제리는 밀의 48%를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한다. 이들 국가가 다른 나라로 수입선을 바꾸려 할 경우 세계 곡물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
문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밀 수출량의 29%를 차지하고 있고, 밀로 만든 빵이 빈곤국 국민의 주식이라는 점이다.
식량 가격 상승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 직접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방글라데시나 마다가스카르, 예멘 등 빈곤국이나 식량 안보 취약국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독일 본대학 마킨 카임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초기 2주간 곡물 가격이 50%나 상승했다며, 거래업자들이 쌀이나 보리 등 밀 대체재를 찾으면서 세계 곡물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10년 전 아랍의 봄 혁명 때 그랬던 것처럼 식량 부족에는 정치적 혼란이 뒤따른다며 "정치적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던 콕스 유엔 WFP 소통담당자는 "식량 조달 계획은 수개월 전에 수립하기에 즉각적인 식량 가격 상승의 영향은 없지만 운송 비용은 이미 오르고 있다"며 "2022년은 '재앙적인 기아의 해'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식량 보호주의 확산 = 주요 7개국(G7) 장관들은 지난주 세계 식량시장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각국이 무역 장벽을 세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호소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헝가리는 곡물 수출 전면 금지는 아니지만 이미 곡물 수출 통제를 강화했고, 터키와 아르헨티나, 세르비아 등도 이미 수출을 금지했거나 통제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아프리카 식량 수입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식량을 전략적으로 비축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본대학 카임 교수는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며 "주요 수출국이 곡물 수출을 통제하면 세계 식량시장에서 가격이 더 오르게 되고 결국 식량 수입국들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멀어진 친환경 농업의 꿈 = 우크라이나 전쟁은 친환경 농업을 통해 농업이 기후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겠다는 유럽의 야망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전쟁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옥수수 수입 감소는 곧 사료 가격 상승을 의미한다,
사료 부족 공포가 커지면서 EU가 추진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농업 계획도 연기하거나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실제로 자연보호를 위해 일부 경작지를 쉬게 하는 규정 시행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그 대신 동물 사료용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녹색당은 이에 반대하며 현 상황을 오히려 육류 및 낙농 산업에 투입되는 자원의 양을 줄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해바라기씨 기름의 도미노효과 = 이번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해바라기씨의 소중함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는 해바라기가 워낙 많이 자라 국화로 지정돼 있다.
EU는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되는 해바라기씨 기름의 절반을 수입한다. 해바라기씨 기름은 제과·제빵은 물론 통조림, 소스, 수프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는 대체 불가능한 식품 원료다.
식물성 기름 정제업체 협회(FEDIOL) 나탈리 르코크 이사는 "유럽은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씨 기름 공급에 의존하고 있기에 이번 전쟁이 공급 문제를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며 우려했다.
스페인 제과산업 그룹 루벤 모레노 대표는 "해바라기씨 기름 재고가 2∼3주 이내에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며 "유럽 전체와 전세계 식품 산업계가 해바라기씨유 확보를 위해 싸우고 있지만 대체 기름이 우크라이나 기름의 자리를 대신 채울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바라기씨 기름 공급 부족은 식당과 다른 식품 서비스 업계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버거킹 같은 외식 업체에도 가격 상승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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