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외부정보 차단된 채 궁지에 몰려 극단적 결정 가능성 우려"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서방 정보 전문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스스로 만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며 그가 수세에 몰리면 외부의 현실과 정보에서 차단된 채 극단적인 결정을 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20일 보도했다.
서방 정보 당국은 오래전부터 푸틴 대통령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힘을 기울여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현 상황에서는 그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이 그의 의도를 알아내고 향후 결정을 예상해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아프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으나, 분석가들은 그보다는 그가 고립돼 있으며 자기 생각과 다른 견해들로부터 차단된 것이 문제라고 보고 있다.
그는 실제로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났을 때와 우크라이나 침공 전날 국가안보회의를 할 때도 긴 테이블 끝에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앉는 등 스스로 고립된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 권력 내부 정보를 수집해온 서방 정보 관리들은 푸틴 대통령이 자기가 만든 거품 속에 고립돼 있으며 외부 정보, 특히 그의 생각에 반하는 정보는 이 거품을 통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아드리안 퍼넘 심리학 교수는 "푸틴은 특정 소수의 사람 말만 듣고 나머지는 모두 차단한다는 면에서 자기 선전의 희생자"라며 "이런 행동은 외부 세계에 대한 이상한 시각을 심어준다"고 말했다.
이어 집단 내에서 특정 견해만 강화되는 이런 위험성을 '집단사고'(group think)라고 한다며 "그가 집단사고의 희생자라면 우리는 그 집단의 구성원이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방 정보 관리들은 지금까지 푸틴 대통령이 의견을 듣는 집단이 컸던 적이 없었다며,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의 경우 의견을 나눈 사람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손에 꼽을 정도의 소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푸틴을 관찰해온 정보 관계자들은 푸틴을 움직이는 것은 1990년대 냉전 종식 후 러시아가 당한 굴욕을 극복해야 한다는 '욕망'과 서방이 러시아를 몰락시키고 자신을 권좌에서 끌어내릴 것이라는 '확신'이라고 말한다.
푸틴을 만난 한 인사는 그가 2011년 권좌에서 쫓겨난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처형당하는 비디오를 강박적으로 시청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푸틴의 정신 상태에 대한 평가 요청에 "그는 수년간 불만과 야망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살아왔다"며 "자기 생각은 더 굳어지고 다른 견해로부터의 고립은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다.
그가 미친 게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 한 심리학자는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그 사람을 '미친' 것으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근 그에게 상당한 심리적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러시아를 보호하고 위대한 러시아를 재건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푸틴 대통령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껴 조급해졌을 수 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고립 장기화가 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생각보다 고전하고 있고 서방의 제재 수준도 매우 높은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이 자신이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나올지가 서방 국가들이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푸틴 대통령이 코너에 몰린 쥐가 되레 고양이를 공격하는 것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거나, 자신이 위험하고 비이성적인 행동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른바 '광인이론'(madman theory) 전략을 쓸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 서방 국가 관리는 "그가 더욱 포악한 방식으로 달려들거나 무기의 수준을 높일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서방은 상황이 악화할 경우 푸틴 대통령이 화학무기나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서방 정보당국과 정책 입안자들에게 현재 푸틴의 의도와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어야 그가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을 선까지 그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 WH 부시 재단 미중관계 선임연구원인 켄 데클레바는 "푸틴의 자아개념은 실패나 나약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경멸한다"며 "코너에 몰린 약해진 푸틴은 더 위험하다. 곰을 우리에서 풀어줘 숲으로 돌아가게 하는 게 나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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