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차례로 유럽과 정상회의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미국과 중국이 이번 주와 다음 주 각각 유럽과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 정상외교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향배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는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잇따라 참석한다.
또 중국이 아직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내달 1일 EU와 중국 간 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이라고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무역 담당 EU 집행위원이 지난달 말 밝힌 바 있다. 예정대로 개최된다면 화상 회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의 브뤼셀 방문 계기에 미국과 유럽은 중국의 대러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차단 또는 최소화하기 위해 공조하는 데 뜻을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2일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방문 의제로 러시아에 대한 신규 제재 발표 계획과 함께 중국 문제를 거론했다.
대러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대러 제재의 '구멍'이 될 수 있는 중국의 러시아 지원을 견제하는 방안이 미국과 유럽 정상들 간에 논의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미 미국은 지난 18일 미·중 정상의 영상 통화 때 중국이 러시아를 물질적으로 지원할 경우 '전세계적 후과'가 있을 것임을 경고한 바 있다. 따라서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군사 지원 등을 감행할 경우 미국과 유럽이 함께 중국에 대한 제재에 나서는 방안에 대해 미국-유럽 정상들 간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어 내달 1일 중국-EU 정상회의가 열리면 유럽은 대러 제재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결집된 의지를 전달하는 한편, 중국에 러시아와 '거리두기'를 강도 높게 촉구할 전망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대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각성함에 따라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온 중국에 대한 유럽의 경계심도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중국이 러시아에 군사 지원 등을 할 경우 유럽도 미국이 추진할 중국 제재에 동참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중-유럽 정상회의 계기에 중국 측에 전달될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2일자 기사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국과 유럽의 관계는 더 가혹한 시험대 위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유럽의 한 고위 외교관은 "중국이 러시아에 군사적 지원을 한다면 중국을 중재자로 활용하려던 논의는 종료된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은 그때부터 사실상 공범자가 된다"고 말했다.
관심은 중국의 대응이다.
현재 중국은 러시아를 지원하면 중국에도 후과가 있을 것이라는 바이든의 경고와 관련해 탄약과 무기 등을 공개적으로 러시아에 지원하는 데는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작년 기준 178조원에 달하는 러시아와의 정상적인 교역은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중국-유럽 정상회의가 열리면 중국이 이런 입장을 그대로 확인하게 될지 관심을 모으는 형국이다.
미·중 갈등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심화하는 양상 속에 중국은 미국과 각을 세우면서도 유럽과는 가급적 갈등을 피하려 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일례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도 유럽에 대해서는 비난없이 '러브콜'을 보냈다.
왕 부장은 "중국의 대 유럽 정책은 안정적이고 견고해서 일시적인 사건에 의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년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탄압 의혹, 대만과 유럽 국가들 간 관계 강화 등으로 인해 중국-유럽 관계가 삐걱대면서 중국이 오랫동안 공들여온 EU-중국 포괄적 투자협정(CAI)의 유럽의회 비준이 보류된 터에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유럽이 중국을 한층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 중국도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선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에 대한 고심이 깊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23일 "미·중 전략경쟁 구도 아래 중국이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과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이후 러시아가 유럽의 군사·안보 위기 요소로 다가온 상황에서 중국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은 유럽 입장에서 매우 다른 의미"라며 "유럽으로선 러시아에 대한 지정학적 인식의 차이에 대해 중국과 다시 논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중국 입장에서 미·중 전략경쟁 구도 아래 러시아와의 전략 협력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전략적, 정치적 측면에서 러시아를 앞으로도 지지할 것으로 보지만 경제적으로는 대러 관계에서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분야별로, 현안별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jh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