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칭송했던 과거에서 '태세전환'…"국수적 성향의 보수 우파 비전 종말"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평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우호적이던 서방의 우파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난감한 처지에 내몰렸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푸틴과 밀착했던 과거의 행적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좌우를 막론한 대중의 지탄을 받고 있는 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처럼 비치는 효과를 내며 이들의 정치적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지난 1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벌어진 '민주주의를 위한 포럼'(FvD) 지지 시위가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수십 명의 시위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실제로는 효력이 없다는 주장을 펼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했다.
그러나 FvD 지도자인 티에리 보데는 사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인 지난달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푸틴 대통령을 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위협과 전쟁에 굶주린 유럽연합(EU)에 맞서 올바른 선택을 보여준 훌륭한 인물"이라고 칭찬했었다.
현재 지구촌의 여러 우파 포퓰리스트가 보데 대표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에 대한 기존 태도를 애써 부정하든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변명을 어렵게 짜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서유럽 내 우파 포퓰리스트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은 대개 푸틴 대통령에 대한 기존의 우호적인 태도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바뀐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이탈리아 극우당 '동맹'(Lega)의 마테오 살비니 당수는 2019년 푸틴 대통령을 놓고 "전 세계 정부 인사 중 최고"라고 추켜 세운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주 폴란드 국경을 방문해 우크라이나 난민을 만났을 때는 러시아 입장과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프랑스의 극우 세력 국민연합(RN)을 이끄는 마린 르펜 대표도 국제사회의 대표적 친(親) 푸틴 인사로, 그는 2014년 러시아가 강제합병한 크림반도를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2017년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난 그는 당선 시 크림반도 합병에 따른 대(對)러 제재를 해제하겠다고도 밝혔었다.
그러나, 최근 르펜 대표는 푸틴 대통령을 향해 '권위주의자'라는 비판을 날리며 재빨리 태세를 전환했다.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알리스 바이델 대표는 더욱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그의 지지 세력은 옛 동독 지역을 근거지로 하는데, 이 지역은 과거 같은 동구권으로 묶였던 러시아에 친숙한 곳이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빌미가 된 나토 가입을 우크라이나에 제안한 서방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미국에서도 푸틴 대통령과 거리를 설정하는 것이 우파 포퓰리스트들에게는 어려운 문제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전쟁 직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독립을 승인하는 결정을 내리자 '천재'라고 치켜세웠었다.
그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지난 2일 침공을 '학살'로 규정하고 러시아 비판대열에 가세했다.
미 보수 성향 방송인 터커 칼슨, 평론가 캔디스 오언스 등 일부 우파 주요 인사들은 푸틴 대통령을 저격하지 않고,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하는 미국 정부를 비판 중이긴 하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무기를 더 지원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목소리가 큰 공화당 지지자들의 입장과 충돌하는 것이라고 이 잡지는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자국 우선주의로 무장하고 난민·무슬림·다문화 사회를 배척하는 전 세계 우파 포퓰리스트에게 푸틴 대통령은 세계화에 반대하고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는 보수주의자로 보였을 것이라 지적했다.
이어 2016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하자, 그와 푸틴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진보적 가치를 옹호하는 서방의 자유주의적 지도부에 맞서 국수주의적 성향의 전 세계 우파 포퓰리즘 세력이 힘을 합치는 것이 가능하다는 비전이 이들 사이서 공유되기 시작했다고 해설했다.
그러나 이번 푸틴 대통령의 침공 결정에 서방의 우파 포퓰리스트가 동조하기 어려워지면서 이런 비전은 잠정적 종말을 맞이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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