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가장 먼저 언급한 이창용…한은 통화정책 기조 바뀌나(종합)

입력 2022-03-24 13:22   수정 2022-03-24 13:25

'성장' 가장 먼저 언급한 이창용…한은 통화정책 기조 바뀌나(종합)
지명 소감에서 "성장·물가·금융안정 균형 고려해 통화정책 고민"
물가·금융불균형 우선 강조하던 이주열 총재와 차이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되면서, 그의 취임 후 한은 통화정책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은과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 후보가 키를 잡아도 최근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통화완화 정도 축소)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후보 지명자로서 내놓은 첫 대외 메시지에 '성장'을 가장 먼저 언급한 사실로 미뤄, 경기를 고려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나 폭을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줄이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이창용 "국내 인플레, 경기 리스크 동시 확대 우려 커져"
이 후보는 24일 "성장, 물가, 금융안정을 어떻게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통화정책을 운영해 나갈지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을 통해 배포한 지명 소감에서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국내 인플레이션과 경기 리스크(위험)가 동시에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런 통화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중국 내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중국 경제의 둔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어 국내외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 후보자는 "앞으로 지난 8년여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가 지금 처해 있는 여러 난관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금통위원들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달 말 퇴임하는 이주열 총재에 대해서는 "8년 동안 한은을 잘 이끌어 주신 이주열 총재님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특히 지난 2년여간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적극적 정책 대응과 그 이후 선제적이고 질서 있는 통화정책 정상화를 추진하신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 "이 후보 성장에 관심 많아…매파적 기조 누그러질 것" 관측 나와
이 후보가 시사한 통화정책 운영 방향은 원론적 내용이지만, 표현 등에서 이주열 현 총재와 비교해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한은 금통위가 제1 관리 대상인 물가, 가계부채와 부동산 등 금융안정 상황, 실물 경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준금리 등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주열 총재의 경우 적어도 지난해 8월 기준금리를 올리며 이른바 '통화정책 정상화'를 시작한 이후 정책 결정의 배경으로 실물 경제를 앞세운 적은 거의 없다.
대부분 급증한 가계부채, 부동산·주식 등 자산으로의 자금 쏠림 등의 금융불균형 상황과 커진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을 '통화완화 기조 축소'의 명분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 후보는 통화정책 결정 시 고려사항으로 가장 먼저 '성장'을 언급했다. 그만큼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급격히 경기가 나빠졌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지난달 24일 금통위 회의까지만 해도 한은과 금통위의 우려는 경기보다는 물가와 금융불균형에 집중됐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이 후보가 총재로 부임하면 상대적으로 성장에 무게를 둬 현재 금통위의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성향이 약해질 것이라는 추측이 벌써 나오고 있다.
그가 평소에 자주 고령화 등 한국의 구조적 성장 잠재력 약화, 일본 같은 장기 경기 침체 가능성 등을 강조한 사실도 이런 관측의 근거로 거론된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이 후보가 최근 블룸버그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이 하반기 피크(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언급했고, 구조적으로도 한국이 인구 고령화에 따른 저성장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은의 매파적 기조가 좀 누그러지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장기적으로도 이 후보는 인플레이션 보다 성장에 좀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며 "통화정책 기조가 이주열 총재 재임 때와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SK증권[001510]도 최근 채권전략 보고서에서 "이 국장이 한은 총재로 부임할 경우, 채권시장에서는 상대적 강세(채권가격 상승·금리 하락) 재료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며 "선진국형 경제 구조로 빠르게 접근하는 한국 경제 특성상, 고령화에 따른 민간 경제의 역동성 저하를 우려하는 그의 판단이 기준금리 인상의 상단을 견고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이 후보 "금리인상으로 부채비율 조정 시점" 언급도
하지만 이 후보가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나 물가 상황이 심각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적도 있는 만큼, 그의 성향이 비둘기파적(통화 완화 선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여전히 많다.
그는 지난 1월 회계·컨설팅법인 EY한영이 개최한 신년 경제전망 세미나에서 "한국은 경기 회복세가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 목표치를 상회하고 있다"며 "물가안정, 경기회복, 자산 가격 조정의 연착륙 등 상이한 목표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통화와 재정정책의 섬세한 공조가 어느 때 보다 필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달 언론 인터뷰에서는 "힘들더라도 우리나라도 금리 인상을 통해 부채비율을 조정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며 "유동성 파티는 당장 성장률이 높아 보이게 할 수 있지만,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신임 총재 후보의 성향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근본적으로 금통위가 7명 위원의 합의로 운영되는 만큼 통화정책이 한 명의 총재 교체만으로 크게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이주열 총재도 23일 간담회에서 "만약 총재가 공석이더라도 금통위는 합의제 의결 기관이기 때문에 통화정책은 차질없이 시행될 것이고, 실기나 차질 등의 우려는 기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에 따르면 이 후보는 오는 29일 미국 워싱턴에서 출발해 30일 오후 귀국할 예정이다.
shk99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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