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하지 않을 것 자꾸 공표하면 푸틴 대담해질 수도"
바이든, 고전적 억지기법 '전략적 모호성' 포기 논란도…미 "선명한 메시지 중요"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서방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가 러시아를 억제할 추가대책을 논의할 정상회의를 앞두고 불협화음을 노출하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견의 원인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중과 러시아에 보내는 메시지가 너무 많다는 인식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서방의 개입 경계선을 스스로 선명하게 그어 러시아의 담력을 키운다는 불만이 일부 유럽국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오는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예정된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의 생물학, 화학,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사용을 막을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그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의 입이 더 주목된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정상회의 전날 기자회견에서 두루뭉술한 말로 일관했다.
그는 "어떤 식으로라도 화학무기를 쓰면 분쟁의 본질이 완전히 바뀔 것이고 파급력이 큰 대가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가 나토의 군사대응 가능성을 우려해 자제하도록 하는 전통적 억지 기법인 '전략적 모호성'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최근 성향으로 미뤄볼 때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억지력 포기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관측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변에 군사력을 증강할 때 미국의 군사개입이 없다고 직접 확인을 되풀이했다.
일각에서는 그로 인해 러시아가 대담해져 침공을 단행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들어서도 서방과 러시아의 직접 충돌은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말을 수차례 되풀이했다.
그는 동유럽 나토 동맹국인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미그 전투기 제공을 제안했을 때에도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며 거절했다.
이 같은 일련의 태도 때문에 러시아가 서방의 직접 군사개입은 없을 것으로 안심하고 대담해진 것이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마르코 미켈슨 에스토니아 의회 외교위원장은 "3차 대전, 러시아와 충돌을 원치 않는다는 식의 말을 너무 자주 하면 생산적이지 않다"며 "우리가 러시아를 겁낸다는 청신호를 러시아에 보내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WP는 안보 우려가 상대적으로 큰 동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영국, 일부 서유럽 국가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된다고 전했다.
한 유럽 외교관은 "나토가 하지 않을 것들을 미리 공개적으로 말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의 군사고문을 지낸 프랑수아 에스부르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유럽 선임고문은 "바이든 행정부가 입을 닫아야 할 때가 있다는 점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스부르는 "전반적으로 위기관리가 양호했지만 하지 않을 것에 대한 부주의한 발언이 문제"라며 "침묵은 군사를 동원하지 않겠다는 신호가 아니라 군사개입에 대한 불확실성을 적군의 머릿속에 남겨 추가 군사행동에 위험부담을 떠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들의 이 같은 지적에 뚜렷한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전쟁을 확실히 끝내기 위해 우리 목표를 선명하게 할 의무가 있다"고 항변했다.
그는 "그런 목적을 위해 전쟁을 확대하고 더 많은 생명을 위험하게 할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왔다"며 "이는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 생명을 구하는 책임감 있는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5일 나토의 동부 최전선 폴란드 방문까지 이어지는 이번 유럽 방문에서 나토 단결력 강화, 난민사태 해결책, 군사개입 수위 조절, 러시아에 대한 제재 로드맵, 중국 견제 방식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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