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자극 피하려는 듯 中 발표엔 북한 관련 언급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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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5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통화에서 대체로 우호와 협력을 강조하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와 같은 민감한 현안을 직접 거론하는 것을 피했다.
중국 내부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윤 당선인의 후보시절 외교 공약에 대한 경계심이 작지 않지만 인사를 겸한 첫 통화의 성격을 감안해 '협력'에 포커스를 맞춘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한중간 정치적 상호 신뢰 강화', '한중관계 안정화' 등을 거론한 대목은 윤 당선인의 한미동맹 강화 기조를 은근히 견제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었다.
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한 다음날 이뤄진 통화였음에도 중국 측 발표에 북한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북한에 대한 배려로 해석됐다.
◇ 통화 자체가 한중관계 중시 기조 반영…美 '디커플링' 시도 속 공급망 협력 강조 주목
이번 통화의 내용을 논하기 전에, 통화가 성사된 것 자체가 치열한 미중 전략경쟁 속에 중국이 한중관계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 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시 주석이 외국 정상 '당선인'과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앞서 2016년 11월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사례가 있지만 많은 경우 선거 결과 확정 후 당선인에게 축전을 보낸 뒤 취임후 통화를 해왔다.
특히 이번 통화가 성사되기까지 중국 측에서 적극성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측이 정상간 통화를 보도할 때 상대 측이 요청한 경우에는 보통 '약속에 따라'의 의미인 '잉웨(應約)'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번 통화 결과에 대한 중국측 자료는 '잉웨'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통화했다"고만 소개했다.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해온 윤 당선인의 후보 시절 공약에 비춰 한국 새 정부 출범 후 대 중국 정책의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국 측은 미리 윤 당선인과의 소통 기회를 가질 필요를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찌감치 윤 당선인과 통화를 했고, 대미 특사 파견 및 조기 한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정책에 미국의 '그림자'가 짙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 수도 있어 보인다.
중국측 발표를 보면 윤석열 정부와 협력을 강화하길 바라는 중국의 의중이 곳곳에 투영됐다.
시 주석은 양국 관계에 대해 "서로 이사할 수 없는 영원한 이웃이자 떼어 놓을 수 없는 파트너"라고 표현하면서 "한중이 협력을 강화하면 양국의 발전과 국민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올해가 수교 30주년의 해임을 거론하며 한중간 고위급 교류 강화, 민간 우호 추진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전세계 산업 사슬과 공급망 안정을 위해 한국과 함께 적극적인 노력을 해나가길 원한다"고 밝힌 대목이다.
미국이 전략경쟁 상대인 중국을 낙오시키기 위해 반도체 등 핵심 산업 영역의 전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이른바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의 인식이다. 시 주석은 한국이 미국의 중국 배제 시도에 동참하지 말고 서로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협력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 '정치적 신뢰', '한중관계 안정화'에 내포된 견제구
시 주석은 윤 당선인과의 첫 통화에서 무게 중심을 우호와 협력에 뒀지만 '견제구'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도 없지 않았다.
'정치적 상호 신뢰 강화'와 한중관계의 '장기적 안정화(行穩致遠·행온치원·멀리 가려면 안정적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를 거론한 대목에는 다분히 사드 추가 배치와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협의체) 단계적 가입 등 윤 당선인 후보 시절 공약을 견제하는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읽혔다.
한중간 사드 갈등이 가장 심했을 때 주한 중국 대사였던 추궈훙 전 대사는 지난 1월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사드 갈등의 최대 원인으로 "양국간 정치적 신뢰 부족"을 꼽은 바 있다.
이런 진단을 시 주석 발언과 연결하면 시 주석은 한중간 정치적 상호 신뢰를 강화해 사드와 같은 갈등 요인은 피해가며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일 수 있어 보인다. 바꿔 말하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의 노력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문재인 정부 대중 정책 기조가 유지되기를 기대하는 메시지로도 해석됐다.
◇ 북한 언급 없는 중국 측 발표…ICBM에도 대북 제재 반대하는 중국 기조와 오버랩
윤 당선인은 북한의 전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관련해 시 주석에게 "북한의 심각한 도발로 인해 한반도 및 역내 긴장이 급격히 고조돼 국민적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고 윤 당선인 측이 밝혔다.
그러나 중국 측 발표에는 '국제 및 지역에서의 (한중) 협력 강화'라는 표현만 있었지 '북한'을 적시한 표현은 없었다.
이는 미중 전략경쟁 심화 속에 중국이 최근 북한의 탄도 미사일 연쇄 발사에도 대북 제재 강화에 반대하며 북한을 옹호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분히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중이 읽혔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5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대북 추가 제재 결정과 관련해 논평을 요구받자 "현 국면에서 상황을 더 악화할 수 있는 어떠한 행위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 윤석열-시진핑 첫 정상회담 시기는…한국 코로나 상황 등 조기 성사에 변수
윤 당선인 측 발표에 "윤 당선인 취임 후 이른 시일 내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긴밀히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한국 새 정부 출범 이후의 첫 한중간 대면 정상회담이 언제 개최될지도 관심을 모은다.
5월 한국 새 대통령 취임이라는 요인이 있지만 차기 한중 정상회담은 중국 정상의 방한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외교 관행에 부합한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 중 2017년과 2019년 두 차례 방중했던 만큼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할 차례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 주석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2년 이상 외국 방문을 하지 않았고, 그동안 시 주석 방한이 미뤄져온 요인 중 하나로 중국 측이 시사해온 한국의 감염 확산 상황은 아직 엄중하다는 점이 조기 성사에 변수로 거론된다.
외교 관행을 뛰어 넘어 윤 당선인이 먼저 중국을 방문하는 것도 옵션이 될 수 있지만 한중간 상호 존중을 강조해온 윤 당선인이 대 중국 외교의 첫 단추를 끼우는데 있어 국민 정서를 중시할 것이기에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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