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러·우크라 협상 '조금씩 진전'…출구전략 시사

입력 2022-03-28 15:33  

[우크라 침공] 러·우크라 협상 '조금씩 진전'…출구전략 시사
핵심 쟁점 영토문제 타협 가능성…중립국화·안전보장 등도 거론
우크라 비무장화 요구 걸림돌…러시아 시간벌기 '기만전술'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전쟁을 끝내기 위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 협상이 타결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커지는 분위기다.
양측이 출구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언급하면서다.
더 이상의 참화를 막기 위해 평화협상에 절박하게 임하는 우크라이나는 이미 여러 쟁점에서 타협안을 내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언론 인터뷰와 연설을 살펴보면 그는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비핵보유국 지위, 안보보장,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 허용 등 사안에 타협의 여지를 제시했다.
또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 분리주의 반군이 점령한 돈바스 지역 문제에 대해서도 협상을 원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의 이런 발언은 2014년 러시아가 병합한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 등 영토 문제는 양보할 수 없다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중립국이 되기 위해서는 제삼자에 의해 우크라이나의 안전이 보장돼야 하며, 이는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헌법에 규정된 나토 가입 목표를 폐기하려면 국민투표를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협상 대표단은 개전 나흘만인 지난달 28일 벨라루스에서 1차 협상 테이블에 앉은 데 이어 이달 3일에 2차, 7일에 3차 협상을 벌였다.
양측은 14일부터 화상 회담 방식으로 4차 협상을 하면서 중요한 쟁점에서 의견이 상당히 접근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르면 28일 열릴 5차 평화 협상을 중재하는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중대한 이슈들에 대한 합의에 가까워지고 있고 일부 주제는 거의 합의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측 협상 대표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도 양측이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와 나토 가입 포기 문제는 상당한 정도로 이견을 좁혔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협상에서 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 영국, 터키 등이 자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우쇼을루 장관도 "우크라이나는 5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함께 독일과 터키가 우크라이나를 위한 집단안전보장을 제공해 줄 것을 제안했다"고 확인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역시 그런 제안을 반대하지 않으며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국 외무장관을 모두 만난 그는 "양국간 휴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기대했다.



5차 협상을 앞두고 러시아 측에서도 타협 가능성을 시사하는 언급이 나왔다.
러시아군 총참모부 제1부참모장 세르게이 루드스코이는 25일 전황과 관련 "'1단계 작전'은 대부분 이행했다"며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역의 완전한 해방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제노사이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거듭 주장했다.
개전 초기엔 속전속결로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악하고 친서방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러시아의 목표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으로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목표를 축소하고 출구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측의 이 같은 입장 변화에 때맞춰 우크라이나도 돈바스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이자 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돈바스 문제가 5차 협상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세운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이 곧 러시아 연방 가입을 위한 주민투표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사실상 강제병합 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려고 주민투표를 거친 적 있다.
서방에서도 평화 협상 타결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자체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고 일종의 수단일 뿐"이라며 "이 전쟁이 끝나고 푸틴 대통령이 침공을 중단한 뒤 제재가 결국 끝났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라고 말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중단하면 기존의 러시아 제재를 철회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적지 않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것이다.


크림반도와 돈바스 등 영토 문제에서 큰 틀의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세부 사항의 이견으로 언제든 협상이 파기될 수도 있다고 분석가들은 지적했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문제는 젤렌스키 대통령도 결코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거듭 밝혀 타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러시아가 비무장화를 계속 고집하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고전하는 러시아군이 전열을 정비하고 전력을 보충할 시간을 벌기 위해 협상을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으로 작전 영역을 축소하려는 것도 기만전술일 공산이 있다고 경고했다.
BBC는 실제로 러시아가 새롭게 10개 대대전술단을 구성해 돈바스 지역으로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의도를 재평가할 필요성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songb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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