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에게 납치돼 숨진 흑인 소년 '에멧 틸' 이름 붙여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형사처벌 권한이 없는 개인이나 단체가 가하는 사적 형벌(私刑)인 린치(Lynch)를 증오범죄로 규정하고 최고 징역 30년형에 처하는 법안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서명했다.
AP·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미 의회가 통과시킨 '에멧 틸 안티 린칭 법안'에 서명하며 "린치는 모든 미국인이 미국의 구성원이며 동등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완전한 테러"라고 말했다.
그는 "인종적 증오는 예전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되는 문제"라며 "증오는 숨을 순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 법을) 절대 포기하지 않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이 법은 린치를 단순한 폭행이 아니라 '인종차별 또는 편견에 근거한 범죄'로 규정하고 가해자를 최고 징역 30년형에 처하는 내용이다.
이번에 통과된 법에는 1955년 백인에게 린치를 당해 숨진 시카고 흑인 10대 소년 에멧 틸의 이름이 붙었다.
14세 흑인 소년 틸은 1955년 8월 28일 미국 미시시피주에 있는 삼촌 집에 놀러 갔다가 변을 당했다.
그는 근처 상점에서 계산대에 있던 20세 백인 여성 캐럴린 브라이언트 던햄에게 휘파람을 불고 집적거렸다는 이유로 던햄의 남편 등으로부터 납치됐고, 이후 근처 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용의자 두 명이 체포됐으나 전원 백인으로 이뤄진 배심원단은 무죄로 판단했고, 이 사건은 1950년대 흑인 인권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법정에서 틸에게 추행당했다고 증언했던 던햄이 에멧 틸 사건을 주제로 책을 쓴 작가 티모시 타이슨에게 자신의 증언이 허위였다고 털어놓자 법무부가 2018년 재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법무부 재조사에서 던햄은 타이슨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타이슨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물증이 없어 지난해 말 별다른 성과 없이 종결됐다.
BBC 방송에 따르면 미국 의회에서 린치 방지 법안이 처음 발의된 것은 1900년 당시 유일한 흑인 하원의원이던 조지 헨리 화이트 의원에 의해서다.
이후 200번가량 법안 통과 시도가 나왔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린치에 대한 구체적 규정 등에서 이견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도 2년 전 발의됐지만 한 차례 수정된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2020년 시카고 남부 흑인 다수 거주지역을 지역구로 하는 바비 러시 연방하원의원이 '에멧 틸 안티 린칭 법안'을 발의했고, 민주당의 압도적 지지를 얻으며 하원을 통과했다.
하지만 공화당 소속 의원들의 반대로 상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러시 의원은 린치에 대한 규정이나 범위, 형량 등을 조정한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고, 상·하원 통과 후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법안 시행을 앞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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