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정치 개혁과 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걸고 헌법기관들의 기능을 잇따라 정지시킨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대통령이 이번에는 자신에게 반기를 든 의회를 해산시켰다.
31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은 전날 밤 의회 해산 명령을 내렸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온라인에 게시한 영상을 통해 "우리는 분열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권력 남용자들이 국가를 공격하는 상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대통령의 명령으로 기능이 정지됐던 의회는 이날 8개월 만에 온라인으로 특별 의원 총회를 열어 사이에드 대통령의 일방적 명령 통치를 중단시키는 방안을 두고 의원 투표를 시도했다.
특별 총회에는 이슬람계 정당을 중심으로 재적 의원 217명 중 과반인 116명이 출석했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이날 의원 총회 자체가 불법이라고 규정했으며, 총회 출석 의원들이 튀니지 사회 분열을 목적으로 음모를 꾸몄다고 의회 해산 명령의 배경을 밝혔다.
그는 이어 "중대한 순간에 나라가 분열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며 정치적 폭력을 조장하는 자들이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원들은 이런 사이에드 대통령의 일방적 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온건 이슬람 정당인 에나흐다의 야미나 조글라미 의원은 "합법적인 기구(의회)를 방어하는데 두려움이 없다. 국민은 우리에 대한 신뢰를 철회하지 않았고, 대통령은 탱크로 의회 문을 닫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1야당인 자유헌법당의 아비르 무시 대표는 의회를 해산한 만큼 헌법에 따라 3개월 안에 총선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튀니지는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를 휩쓴 '아랍의 봄' 민중 봉기의 발원지로 중동에서 드물게 민주화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아랍의 봄 이후 처음으로 2018년 5월 지방선거가 실시됐고, 2019년 10월 민주적 선거를 통해 사이에드 대통령이 당선됐다.
하지만 심각한 경제난과 정치적 갈등 속에 국민의 불만이 쌓여왔고, 코로나19 대유행까지 닥치면서 민생고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헌법학자 출신인 사이에드 대통령은 정치권이 부패하고 무능하다며 지난해 7월 히셈 메시시 전 총리를 전격 해임하고 의회 기능을 정지시켰다.
그는 또 새로운 헌법 개정안을 마련해 오는 7월 국민투표를 진행하고, 올해 연말에 총선을 치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또 사법부의 무능과 부패를 질타하면서 사법권 독립을 관장하는 헌법 기구인 최고 사법 위원회(CSM)도 해체했다.
주요 정당들은 대통령의 돌발행동을 '쿠데타'로 규정하며 반발했다.
정치권에 불만을 품은 일부 국민은 그의 조치를 전폭적으로 지지했지만, 헌법을 무시한 대통령의 '명령 통치'가 길어지면서 국민의 반감도 커졌고 국제사회도 우려를 표명해왔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