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 "서방·극동 vs 아프리카·중동으로 갈라져…국제 질서 변곡점 될 수도"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대응을 놓고 세계가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적인 미국·유럽·극동과 미온적인 아프리카·중동 등으로 갈리면서 이번 전쟁이 국제질서 재편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미국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러시아를 정치·경제·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데 국제사회의 힘을 모으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수일 후 열린 유엔총회에서는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는 결의안이 찬성 141, 반대 5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돼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지지에 뜻을 모으는 듯 보였다. 이 결의안에 반대한 국가는 러시아를 비롯해 벨라루스, 에리트레아, 시리아, 북한뿐이었고 35개국이 기권했다.
그러나 이 표결에 기권한 아프리카 등지의 35개국을 보면 상황이 단순하지는 않다.
이에 대해 FP는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일부 국가는 러시아와 오랜 유대관계를 맺어왔고 미국에 대해선 불신이 깊어 당장은 관망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전했다.
마투 조이니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유엔대사는 이달 열린 유엔총회에서 미국과 서방 국가들도 과거 유엔헌장을 위반한 적이 있다고 지적하며 "러시아를 침략자로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해 자신들의 지정학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굳이 이를 지적하는 것은 양쪽 모두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많은 국가와 국민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발생하지 않은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FP는 조이니 대사의 발언에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힘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드러난다고 평했다.
미국과 군사·외교적으로 가까운 서방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우방국 외의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 고립 움직임에 동참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나라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속으로 분노할지는 모르되 러시아와 오랜 기간 맺어온 유대관계를 당장 버릴 준비가 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할 경우 연료·식량 가격 상승 등으로 자국민이 받게 될 고통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주요 우방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경제제재를 가하면서 세계가 하나로 결집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그 이면을 보면 세계는 이미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시절은 끝난 것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다극화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고 FP는 지적했다.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낮추면서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인한 식량과 연료 가격 상승이 미칠 영향을 더 걱정하는 모양새다.
이들 중 많은 국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리비아 등에 대한 미국의 군사 개입으로 많은 사상자와 발생하고 국가가 파괴된 데 여전히 깊은 분노를 품고 있다.
남아공과 인도 등 아프리카와 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힌 채 미국과 러시아와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어정쩡한 행보를 보인다.
러시아는 냉전 시대부터 아프리카 국가들과 우호 관계를 넓혀 왔으며 이 지역에 대한 최대 무기 수출국으로 자리 잡으며 긴밀한 군사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아프리카 국가 중 어느 나라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참여하지 않았다.
인도도 러시아에 대한 무기 의존도가 높다.
지난 수년간 예멘 반군에 대한 대응 등을 놓고 미국과 불편한 관계였던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 동참이나 원유 증산 요구에 협력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도 시리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등을 고려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많은 외교관과 외교정책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 결과에 따라 새로운 세계 질서가 만들어지는 역사적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니르 아크람 주유엔 파키스탄 대사는 "전쟁이 협상을 통해 해결된다면 러시아는 제재 해제 없는 해법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에 서방은 제재를 풀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제재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 입장에서 협상이 성사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완전히 반러시아 대열에 설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전쟁이 끝나면 전쟁 전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며 "새로운 세계 질서의 윤곽은 전쟁의 최종 결과와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평화협정 형태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유엔전문가 리처드 고완은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을 놓고 벌이는 이 싸움의 승자는 분명히 러시아는 아닐 것"이라면서 "하지만 아직은 완전한 세계질서 재편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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