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전문가패널 보고서 공개…"제재 회피 수법 갈수록 정교화"
"가상자산 사이버공격 北의 중요수익원…해킹조직, 北 정찰총국과 연계"
코로나탓 北해상활동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부유층도 사치품 못 구해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북한이 지난해에도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들을 사이버 공격해 거액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석탄 불법 수출과 정유제품 밀수는 예년보다 감소했으나, 국제사회의 제재 감시망을 피하기 위한 수법은 갈수록 정교해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1일(현지시간) 공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패널 보고서는 이처럼 매년 되풀이되는 북한의 다양한 제재 회피 실태와 수법을 자세히 소개했다.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이 자체 조사 결과와, 여러 회원국의 보고, 언론 보도 등을 토대로 작성한 이 보고서는 15개국으로 구성된 안보리 승인을 거쳤다.
◇ 북미·유럽·아시아 거래소 공격…노동자 '외화벌이'도 계속
보고서에 따르면 한 회원국은 북한이 지난 2020년부터 2021년 중반까지 북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등 최소 3곳의 가상화폐거래소에서 모두 5천만 달러(약 607억 원) 이상을 훔친 것으로 파악된다고 보고했다.
북한의 가상화폐 절취액이 4억 달러(약 4천854억 원)에 달한다는 민간 사이버보안 회사의 평가도 보고서에 담겼다.
블록체인 분석업체인 체이널리시스는 북한과 연계된 해커들이 지난해 가상자산 거래소와 투자회사 등을 대상으로 최소 7건의 사이버공격을 감행해 이러한 피해를 발생시킨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이러한 사이버공격의 배후에는 북한 정찰총국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해킹조직 '라자루스'가 있는 것으로 체이널리시스는 판단했다.
전문가패널은 "특히 가상자산에 대한 사이버공격은 여전히 북한의 중요한 수익원"이라며 금융기관, 가상화폐 기업과 거래소를 계속 타깃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조직 '김수키'로 추정되는 해커들이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항공우주산업에 사이버 공격을 가한 사건도 전문가패널이 조사했다.
'라자루스'가 지난해 3월 일본 정부기관들을 상대로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감행한 사건과 '코니'라는 이름의 북한 해커 조직이 올해 1월 러시아 외교당국을 겨냥했다는 한 사이버보안회사 보고 역시 보고서에 담겼다.
북한의 해외노동자 송환 기일인 2019년 12월 말 이후에도 여전히 다수의 북한 노동자들이 중국과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 남아 외화벌이를 계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북한 노동자들이 이들 국가에서 건설업, 서비스업 등에 여전히 종사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이들은 지난 2020년 초 코로나19 사태 이후 북한의 국경 폐쇄로 귀환이 불가능해진 탓에 계속 해당 국가에 체류 중이라고 한 회원국은 평가했다.
◇ 중국에 석탄 55만톤 불법 수출…디지털 선박 세탁으로 감시망 무력화
북한의 정유 제품 밀수, 석탄 수출, 조업권 판매 등의 불법 해상활동은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탓에 예년보다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
북한이 최근 육로를 통한 교역을 일부 개방하기는 했으나, 이번 조사대상 기간에 북한의 공식 정유 제품 수입은 상한선(연 50만 배럴)의 7.67%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북한의 실제 정제유 수입은 상한선을 초과했을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50개 유엔 회원국은 작년 12월 대북제재위에 제출한 별도 보고서에서 작년 하반기 29건의 보고되지 않은 대북 정제유 제품 밀수 사진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선박당 90%를 채웠다고 가정하면 북한의 정제유 제품 수입은 52만5천967배럴에 이른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북한의 국경 폐쇄로 이러한 불법 수입에는 외국 선박 대신 오직 북한 선박만이 투입되고 있다.
북한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비롯한 바다에서 선박 간 환적을 통해 정유 제품을 몰래 넘겨받는 식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눈을 피하고자 제재 대상 또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선박을 다른 선박으로 가장하는 디지털 선박 신원세탁과 특정 조선소 방문을 통한 페인트칠, 선박 외관 조작 등의 다양한 수법을 동원한 사실도 보고서에 담겼다.
종전에는 거짓 자동선박식별시스템(AIS) 신호를 전송하는 단순한 위장 수법을 활용했다면, 이번에는 아예 선박의 디지털 신원을 통째로 세탁했다는 것이다.
한국 선박이 브로커와 위장회사 등을 거쳐 북한으로 넘어간 과정도 보고서에 포함됐다.
예년보다 크게 줄어들기는 했지만, 불법 석탄 수출 역시 계속된 것으로 파악됐다.
한 회원국은 북한이 2020년 9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최소 64차례에 걸쳐 중국 영해와 항구에서 55만2천400 미터톤의 석탄을 수출한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의 석탄 불법 수출은 닝보-저우산항에 주로 집중됐다. 이는 중국이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돕고 있다는 정황으로 보인다.
◇ 코로나 탓 北무역 위축…사치품 수입못해 부유층도 '난리'
국제사회의 제재에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북한의 '셀프 봉쇄'까지 겹치면서 무역활동이 크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1∼9월 대외교역량은 전년 동기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했다.
다만 작년 하반기부터는 조금씩 북한의 무역이 회복 조짐을 보였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주류를 포함한 소비재 수입이 사실상 전면 중단돼 전자제품, 화장품, 세제 등의 시장 가격이 급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북한에서 가장 부유한 소비층조차 사치품에 접근할 수 없었다고 이들 소식통은 밝혔다.
지난해 하반기 잠깐 제한적으로 무역이 재개됐을 때 북한 지도층을 위한 유명 브랜드 소비재와 사치품이 인도주의 구호 물자와 의료 물자를 실은 선박을 통해 몰래 반입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으나, 전문가패널은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고 전했다.
전문가패널은 북한의 관리들이 메르세데스 벤츠 G-클래스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이용한다는 언론 보도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한 회원국 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북한 민용항공총국은 중국 회사를 통해 60만달러(약 7억3천만원) 상당의 도요타 고급 SUV 4대를, 같은 해 5월 40만달러(약 4억9천만원) 상당의 산업용 차량과 트럭을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의 인권 상황도 코로나19 봉쇄 탓에 "계속해서 악화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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