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 '표정 관리'…"유가 급락 가능성에 대비"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국내 정유사들이 올해 1분기에 역대급 실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사들의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2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상승한데다 원유 재고평가이익도 급등한 덕분이다.
정유업계는 고유가 상황에서 큰 수익을 올리는 것인 만큼 표정 관리를 하는 동시에 향후 유가 급락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분위기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넷째 주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전주(7.76달러)보다 6.11달러 상승한 배럴당 13.87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올해 1분기(1∼3월) 평균 정제마진도 배럴당 7.70달러로 지난해 1분기의 1.8달러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
정제마진은 휘발유나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 각종 비용을 뺀 금액으로, 유가 상승기에 정제마진도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업계는 정제마진이 4달러는 돼야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정제마진은 코로나19 사태로 석유 수요가 급락하자 2020년 마이너스 수준까지 내려갔고, 지난해 상반기까지도 배럴당 1~2달러 수준에 머물렀다가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정제마진 개선과 더불어 정유사들은 유가 상승에 따라 저유가일 때 사들였던 원유비축분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재고평가이익도 누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국내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는 올해 1월 초 배럴당 76.88달러에서 3월 말 107.71달러로 40%나 급등했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이 1분기에 역대급 실적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연합인포맥스 시스템을 통해 최근 2개월간 발표된 증권가의 1분기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SK이노베이션[096770]은 정유 부분의 실적 호조를 바탕으로 작년 1분기보다 56.70% 늘어난 7천874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추정됐다.
최근에 전망치를 발표한 한화·KB증권·유안타증권은 영업이익 규모를 1조2천억∼1조4천억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순수 정유업체인 에쓰오일은 작년 1분기보다 80.13% 급등한 1조1천33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관측됐다. 종전의 최대 분기 실적은 2008년 2분기의 7천41억원이다.
신한금융투자 이진명 연구원은 "지정학적 리스크로 국제 유가 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수급도 빠듯해 정제마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글로벌 석유제품 재고가 낮고 코로나19 팬데믹 완화로 인한 수요 회복으로 정제마진 강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유사들은 그러나 향후 유가가 급락할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지난달 31일 주주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올해 유가가 급등하면서 석유사업의 순익이 대규모로 개선되는 것은 맞다"면서도 "유가는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다. 유가가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이어 "그런 리스크에 어떻게 선제로 대응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며 "유가는 급등락보다는 안정적인 흐름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내 정유사들은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초까지 공장을 완전히 가동해왔으나 글로벌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가동률을 보수적으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2∼3개월 전에 원유 도입을 확정하기 때문에 당장 가동률을 조정하지는 않겠지만 5월부터는 보수적 가동 기조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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