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채찍 vs 포옹…범죄 수렁에서 나라 구할 중남미 지도자는

입력 2022-04-03 07:07  

[특파원 시선] 채찍 vs 포옹…범죄 수렁에서 나라 구할 중남미 지도자는
'갱단과의 전쟁' 엘살바도르 대통령 vs '총탄보다 포옹' 멕시코 대통령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하얀 속옷 하의만 입은 채 줄줄이 포개져 있는 문신투성이의 건장한 남자들.
엘살바도르 대통령실이 최근 공개한 사진 속의 인물들은 교도소에 수감된 갱단 조직원들이다.
엘살바도르 정부가 전국 교도소의 경비를 대폭 강화하기로 하면서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을 한데 모아놓은 채로 감방을 수색하는 장면이었다.
재소자 인권이나 초상권은 개의치 않는 이 사진들의 목적은 단순히 교정당국의 조치를 알리는 것 이상이다.
밖에선 공포의 대상인 갱단 조직원들이 헐벗은 채 교도관에 고분고분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갱단엔 굴욕을, 일반 국민엔 통쾌함을 안기고, 대통령은 갱단을 가뿐히 제압하는 실력자로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1981년생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2019년 6월 취임 직후부터 부패 척결과 더불어 범죄율 감소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인구 대비 살인 건수가 전 세계 최다 수준이고, 경찰보다 갱단 조직원이 많은 엘살바도르에선 그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
지난달 한 토요일 하루에만 62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부켈레 대통령은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갱단과의 전면전에 나섰다.
일주일 사이 4천 명 넘는 조직원들을 무더기로 잡아들이고, 조직범죄 가담자들의 형량을 무려 5배 상향했다. 이미 수감된 갱단 조직원들에게 매트리스를 빼앗거나 식사를 줄이기도 했다.
엘살바도르 못지않게 범죄조직의 강력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가 중 하나는 멕시코다.
엘살바도르에 악명 높은 조직 'MS-13'(마라 살바트루차), '바리오 18'이 있다면 멕시코엔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 '시날로아 카르텔' 등이 있다.
2018년 12월 취임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반기득권을 자처하는 포퓰리스트 지도자라는 점, 임기 반환점을 돈 지금도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부켈레 대통령과 닮았다.
그러나 범죄에 대처하는 자세만큼은 극과 극이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치안 대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표현은 '총탄 대신 포옹'(abrazos no balazos)이다.
그는 전임 정권에서 벌였던 '마약과의 전쟁'이 오히려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범죄를 더 부추겼다고 비판한다.
무력 진압보다는 온화한 대응을 선호하고, 당장 카르텔을 척결하기보다는 청년들이 범죄조직에 가담하지 못하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등의 장기적 대책에 집중한다.
두 지도자의 극과 극 정책의 성적표는 어떨까.
엘살바도르의 살인 건수는 2018년 3천345건에서, 2019년 2천398건, 2020년 1천341건, 지난해 1천140건으로 크게 줄었다. 지난해 건수는 1992년 이후 최저치다.
반면 멕시코의 살인 건수는 2019년과 2020년 역대 최고 수준인 3만6천여 건을 기록했다. 지난해는 3만3천여 건으로 다소 줄었으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임기 39개월간의 살인 건수는 같은 기간 과거 정권들에서보다 많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단순히 이러한 수치로만 성과를 논하긴 어렵다.
멕시코 대통령의 정책이 그야말로 장기적인 해법이라는 점에서 두 지도자 중 누가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었는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사실 눈앞에 보이는 수치를 기반으로 중남미 지역의 범죄가 줄거나 늘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미국 재무부는 "부켈레 정권이 갱단 범죄 건수와 살인 건수를 줄이기 위해 MS-13, 바리오 18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부켈레 대통령은 부인했지만, 포퓰리스트를 자처하는 젊은 대통령이 '범죄척결 쇼'를 연출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적지 않다.
실제 멕시코에서도 과거 마약 범죄 소탕 작전을 지휘한 장관 등이 마약 혐의를 받은 전례도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범죄를 어떤 식으로 줄일 것이냐는 방법론보다 지도자가 진정으로 범죄를 척결할 의지가 있느냐일 것이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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