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전범 재판의 한계…'무권유죄 유권무죄' 선택적 정의

입력 2022-04-11 13:12  

[우크라 침공] 전범 재판의 한계…'무권유죄 유권무죄' 선택적 정의
NYT "현 정권·권력자 처벌 사례 없어…러 지도층 궐석재판은 가능할 것"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집단학살 등 러시아의 전쟁범죄 정황이 속속 나오면서 국제사회에서 전범 재판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권좌에 있는 사람을 단죄한 적이 없는 전범 재판의 한계로 인해 러시아 권력층이 처벌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키이우(키예프) 인근 부차에서 목격된 손이 묶인 채 살해당한 민간인 시신과 미사일 공격에 300명 이상 사상자가 발생한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비극 등 러시아군 전쟁범죄 의혹이 커지면서 각국 정상과 인권단체 등은 한목소리로 전쟁범죄를 단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NYT는 그러나 전쟁범죄 조사관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증거 조사에 나서면서 전범 재판에 대한 불편한 진실도 다시 소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쟁범죄 증거가 아무리 끔찍해도 현 정부와 그들의 군인이 전쟁에서 한 행동으로 국제 법정에 기소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마련된 국제 법정에서 성공적인 전범 재판이 여러 차례 열렸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가해자가 처벌되기 어려울 것임을 시사하는 패턴을 찾을 수 있다고 NYT는 설명했다.
실제로 전쟁 범죄에 대한 단죄는 전후 독일이나 미국이 점령한 이라크에서처럼 승전국이 행했다. 르완다나 코트디부아르 같은 곳에선 내전의 승자가, 세르비아와 시에라리온 등지에선 권력 다툼에서 이전 정부를 전복시킨 새 정부가 패자에게 전쟁 범죄를 심판했다.
국제법 옹호론자들은 국제형사재판소(ICC) 같은 기관들이 법을 냉정하고 투명하게 적용한다고 주장하지만 재판은 보통 수년간 진행되고 때로는 무죄 선고로 끝나기도 한다.
명확한 사실은 전쟁이나 권력 투쟁의 승자가 패자들을 넘겨주지 않는 한 전쟁 범죄 용의자들이 법정에 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전쟁 범죄를 저지른 권력자나 정부가 권력을 유지하는 한 증거가 아무리 명확해도 그들에 대한 어떤 전범 혐의도 상징적인 것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현재 시리아와 미얀마, 그리고 전쟁 범죄로 비난받는 측이 권력을 잡고 있는 많은 분쟁 지역에서 발생하는 잔학 행위들에 대한 단죄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런 한계에 대한 실망감을 표하며 "(다른 대안이 없다면) 안보리는 해체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보리가 러시아에 책임을 묻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러시아 전쟁범죄에 대한 재판소 설립을 촉구하면서 "국제법의 시대는 갔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NYT는 "그럴(국제법 시대가 갔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논평했다.
전쟁범죄 단죄의 기원과 한계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세워진 뉘른베르크 재판소에서 출발한다. 이 재판소 설립은 전쟁에서의 행위가 정당한 절차와 공정성 원칙에 따라 범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준 것이었다.
이후 국제 조약과 국제법 기구는 전쟁에서 고문과 집단학살을 포함해 민간인과 인구 밀집 지역에 대한 의도적인 공격을 금지해왔다.
하지만 뉘른베르크 재판소는 패배한 나치의 잔학행위만 재판에서 다뤘고, 승리한 연합국 측의 행위에 대한 단죄는 각국 사법 시스템에 맡겨졌다. 결국 승전국들은 일부 병사들을 처벌했을 뿐, 정부의 책임은 묻지 않았다.
이런 전범 처벌 모델은 지금까지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집단학살로 비난받아온 르완다 내전에서 정부가 바뀐 뒤 유엔이 전범 재판을 위한 재판소를 설치했으나 재판받을 사람을 결정한 것은 새 정부였고 패배한 전 정권 인사들만 대부분 법정에 섰다.
ICC도 지금까지 40여 명을 기소했으나 대부분이 권좌에서 쫓겨나거나 권력투쟁에서 패한 지도자들이나 반군들이었다.
NYT는 ICC의 판결은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때로는 승자들이 상대방을 먼 감옥으로 추방하는 것을 도와 내전이나 권력 투쟁 결과를 승인하는 '고무도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강대국이나 권력자에 대해서는 단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국제 법정이 정의가 아니라 권력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도 나온다.
세계 주요 강대국들은 국제 법원이 상징적으로라도 그들 또는 동맹국의 책임을 물으려는 시도를 가로막아왔고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인도는 지금도 ICC의 관할권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개시한 2002년 미국 의회는 미국인을 법정에 보내지 않겠다고 동의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모든 원조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전쟁 범죄 가해자를 법정에 세울 수 없다 하더라도 국제 법정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며 러시아 고위 지도자들에 대한 궐석 재판에서 잔학행위를 조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립적인 법적 절차에 따라 궐석 재판을 진행해 전쟁 범죄를 밝혀내면 적어도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다.
scitec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