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국제전) 작품들이 밀집해있는 '아르세날레'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조각상과 마주하게 된다.
미국 여성 조각가 시몬 리(55)의 작품으로 억압받는 흑인 여성을 형상화했다.
그 자신이 자메이카계 흑인인 리는 조각을 통해 흑인 여성의 정체성을 조명해왔다.
이 작품이 본전시 가장 앞쪽 공간에 자리한 것은 59회째를 맞은 올해 비엔날레의 차별점이 어디에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실제 올해는 여성성을 드러내는 작품이 꽤 많이 눈에 띈다. 주변부에 머무르거나 사회적 폭력의 대상이 된 여성들의 실존적 이미지를 부각한 작품들이다.
본전시에 초청받은 작가 213명 가운데 90% 가까이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는 예상된 것이기도 하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 작가가 본전시에 참여한 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행사 현장을 찾아 여러 작품을 두루 둘러본 김지연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은 22일(현지시간) "올해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체칠리아 알레마니(뉴욕 하이라인 파크 아트 수석 큐레이터)가 여성을 이야기하기로 작정한듯하다"고 평했다.
본전시에 참여한 설치작가 이미래 씨도 "여성성이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인 것은 자명하다"고 짚었다.
몸·신체를 소재로 한 작품도 다수 출품됐다. 특히 국가관 전시에서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진다.
'입 밖으로 나온 심장'(with the heart coming out of the mouth)을 주제로 한 브라질관은 분절된 신체 이미지를 회화·조각 등의 형태로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흐름을 두고 한때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초현실주의의 '몸 담론'이 재현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고 평하는 이도 있다.
2년 넘게 인류를 지독하게 괴롭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몸에 대해 근본적인 각성·성찰을 하게 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밖에 자국에 뿌리를 둔 '마이너리티', 즉 원주민 혹은 소수 민족을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자기 문명의 근본을 탐구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북유럽의 우랄계 민족인 사미족을 전시 주세로 삼은 노르딕관(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공동 구성), 시몬 리의 조각을 통해 흑인 여성의 존엄·정체성을 반성하며 성찰한 미국관, 역사적으로 유럽 전역에서 박해의 대상이 된 집시의 삶과 역사를 톺아본 폴란드관 등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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