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버스·관광지마다 인산인해 …마스크 벗은 관광객 시내 활보
숙박시설 가격도 껑충…시당국은 벌써 '오버 투어리즘' 고민
(베네치아=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21일(현지시간) 베네치아의 본섬 역사지구의 대표 관광지 산마르코광장은 비교적 이른 아침임에도 몰려든 관광객으로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고 극찬한 이 광장을 빙 둘러싼 카페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거리를 걷는 관광객의 모습이 더욱 활기차 보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2월11일 실외 마스크 의무화를 폐지했다.
광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가브리엘레 씨는 "아직 이른 봄인데도 작년 여름 성수기와 비슷한 규모로 관광객이 몰리는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유럽 최고의 관광지로 꼽히는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2년여의 팬데믹을 견디고 다시 명성을 되찾고 있다.
수상도시 베네치아는 코로나19 팬데믹 전까지만 해도 매년 전세계에서 관광객 3천만명이 몰린 관광 명소였지만 그만큼 팬데믹에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초엔 베네치아가 있는 베네토주가 주요 감염지로 지목돼 전면 봉쇄되기도 했다.
베네치아의 명물 수상버스 바포레토(vaporetto)는 21일 아침부터 탑승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노선의 승선장에는 어김없이 긴 줄이 늘어섰다.
베네치아 당국은 바포레토 승선장의 줄을 관광객과 거주민으로 나눠 거주민에게 탑승 우선권을 준다. 관광객으로 시민의 일상이 불편해지지 않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팬데믹이 본격화한 이후에는 유명무실했다. 바포레토를 이용하는 관광객이 뚝 끊긴 탓이다.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작년엔 거주민용 줄이 관광객용보다 더 붐비는 '이례적인'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반전됐다. 4월 비성수기 시즌임에도 바포레토를 타려면 긴 대기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노선의 바포레토는 만원이 되기가 일쑤여서 2∼3대를 보내야 겨우 탈 수 있을 정도다.
이제야 '꼭 가봐야 하지만 인파를 각오해야 하는' 베네치아다운 풍경을 되찾은 셈이다.
베네치아의 관문인 산타루치아 기차역도 팬데믹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역 주변은 크고 작은 캐리어를 끌고 오가는 관광객으로 분주했다.
두칼레궁전,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등을 가려면 인터넷으로 입장권을 예약할 수 있는데 요즘은 당일은 물론 하루 전에도 표를 구하기 쉽지 않다.
작년엔 당일 예약도 큰 어려움이 없었을 만큼 베네치아는 관광객이 뜸했다.
산마르코 대성당처럼 예약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관광명소는 긴 줄에서 족히 수십 분은 기다려야 했다.
지루한 줄서기에도 관광객의 표정은 밝았다. 2년의 봉쇄와 제한을 벗어난 해방감이 엿보였다.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 축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 개막과 맞물려 이 도시의 숙박업소 가격은 작년의 배 안팎으로 치솟았고 지금은 그마저도 구하기가 어렵다.
현재 본섬 내에 괜찮다는 평을 가진 호텔은 하룻밤 숙박비가 1천유로(약 130만원)를 훌쩍 넘는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주요국이 최근 들어 출입국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올 초부터 단계적으로 입국자의 의무 자가격리, 숙박시설 이용 시 그린패스 제시 의무 등이 폐지됐다. 해외 관광객으로선 이탈리아 입국의 최대 걸림돌이 제거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작년까지 전혀 보기 어려웠던 한국인 관광객도 다수 눈에 띄었다. 한국 관광객도 의무 격리 없이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확인증만 있으면 이탈리아에 입국해 관광을 즐길 수 있다.
베네치아의 한 한국식당 직원은 "지난주부터 눈에 띄게 한국인 관광객이 늘었다"며 "그전에는 손님 대부분이 이탈리아인이었으나 지금은 한국인 관광객이 전체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고 전했다.
현지에서는 돌아온 관광객이 침체한 지역 경기를 살릴 것이라고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버 투어리즘'(과도한 관광객 유입으로 초래되는 환경훼손 등의 사회적 문제)을 벌써 걱정하기도 한다.
억눌려있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단시간에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관광객이 몰릴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런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베네치아 시당국 집계에 따르면 부활절 연휴인 이달 17∼18일 이틀간에만 30만 명에 가까운 국내·외 관광객이 밀려들면서 베네치아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당국이 도시 기능을 유지하면서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다고 보는 적정 관광객은 약 4만∼5만 명이다. 이번 연휴 이틀간 관광객 수는 팬데믹 전(하루 약 8만명)보다도 배 가까이 많았다.
당장 6월부터 이어질 여름 성수기 오버 투어리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당국은 팬데믹 종료를 염두에 두고 작년에 마련한 관광객 통제 시스템을 당장 이번 여름부터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방문 예약을 의무화하고 내년 1월부터는 당일치기 관광객은 1인당 최대 10유로(약 1만3천원)의 입장료를 받기로 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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