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 한일 정책협의대표단을 이끄는 정진석 국회 부의장은 26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면담한 뒤 총리관저 로비에서 대기하던 취재진이 방송용 카메라 등을 설치해놓은 위치로 오지 않고 곧장 출구를 향했다.
한국과 일본 기자들 스무 명 정도가 따라가며 질문을 던지자 정 부의장은 "바람직한 대화를 많이 나눴다.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는 한일 양국이 미래 지향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짧게 언급하고 총리관저를 떠났다.
정 부의장은 결국 장소를 옮겨 한국 언론에만 면담 내용을 설명했다.
정 부의장이 전날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을 각각 면담한 직후 외무성 로비와 경제산업성 로비에서 취재진에 면담 내용을 설명한 것과는 대비됐다.
외무성 로비에서 설명할 때는 일본 기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통역할 시간까지 주는 배려를 했다.
대표단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측이 총리관저 로비에서 기자들에게 설명하지 말 것을 면담에 앞서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총리관저 로비는 주목받는 인물들이 일본 정부 주요 인사와의 면담 내용을 알리는 자리로 자연스럽게 활용돼온 점에서 이례적인 요구로 받아들여진다. 외교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올 수도 있다.
지난달 4일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가 기시다 총리를 면담하고 나가는 길에 총리관저 로비에서 취재진 앞에 섰다.
한국 인사의 경우 2020년 11월에는 박지원 국정원장이 스가 요시히데 당시 총리를 면담한 후 대화 내용을 소개한 바 있고, 며칠 뒤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 역시 스가 총리를 면담하고 로비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에 대표단과의 만남에 관한 내용을 알리는데 꽤 소극적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 하야시 외무상, 하기우다 경제산업상, 기시 노부오 방위상 등과의 면담 현장은 언론에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면담 앞부분에 양 측이 발언하는 것을 공개하는 일도 없었다.
외무성은 하야시 외무상과 대표단의 면담 이후 양측 간 오간 대화 내용 없이 3문장짜리 보도자료를 냈다.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 정부가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은 역사 문제에 관해 일본 측에서 '한국이 해결된 일을 다시 문제 삼았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을 거론하면서 "한일 역사 문제에서 윤석열 차기 대통령이 성과를 낸다는 보증이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기시다 정권 내부 분위기를 25일 전했다.
기시다 정권은 한일 관계에 대한 여론의 동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7월에 일본 참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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