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서부 르비우서 전쟁 발발 후 발레 '지젤' 첫 공연

입력 2022-05-01 20:24  

[우크라 침공] 서부 르비우서 전쟁 발발 후 발레 '지젤' 첫 공연
국립오페라 예술감독 "시민 위로하고 싶어…사랑·삶이 승리하길"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러시아의 무자비한 공격에 두 달 넘게 모든 일상이 파괴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서부 도시 르비우의 한 무대에 발레 공연이 올려졌다고 미국 CNN 방송이 1일 보도했다.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2월 24일 문을 닫은 르비우 국립 오페라 극장은 지난달 29일 전쟁 발발 후 첫 공연을 준비하는 남녀 무용수와 오케스트라, 의상·분장 담당자 등의 분주한 움직임에 모처럼 생기를 띠었다.

공연 준비가 끝나자 스피커에서는 휴대전화를 꺼 달라는 안내와 함께 "공습경보가 울리면 공연이 중단됩니다. 무용수와 관객은 극장 내 대피소로 이동해 주십시오"라는 방송이 이어졌다.
바실 보브쿤 예술감독(64)은 "전쟁은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는 빛이 어둠을 물리쳐야 하고, 삶이 죽음을 이겨야 한다는 것을 안다"며 "극장의 임무는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르비우는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면 거의 파괴되지 않았을 정도로 피해가 적지만, 많은 주민이 폴란드 등지로 피란을 떠난 것이나 일상이 무너진 것은 다른 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르비우에 남은 사람들은 서서히 전쟁과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도심의 카페와 식당은 다시 문을 열었고 거리와 공원에도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다.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보브쿤 예술감독은 격렬한 전쟁 속에서도 시민들에게 위로의 장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공연을 재개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그가 선택한 작품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한 후 요절한 아름다운 시골 소녀 이야기가 담긴 고전 발레 '지젤'이다.
그는 "지젤에는 다양한 모양의 기쁨과 슬픔이 있고 죽음과 사랑의 승리도 있다"라며 "죽음의 소식이 너무나 많은 지금, 우리는 이 작품과 실제 삶에서 모두 사랑과 삶이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인기가 좋아 항상 표가 잘 팔리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대피소 수용 인원에 맞춰 관객을 300명으로 제한했음에도 곳곳에 빈자리가 보였다고 CNN은 전했다.
그는 "전쟁통에 좋은 뉴스라고는 없는 이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이 뉴스를 잊을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하고자 한다"며 "시민들이 작품을 통해 영적으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젤 역을 맡은 발레리나 다리나 키리크(21)는 "친척들은 대부분 키이우(키예프)와 그 주변에 있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부차에서 가까스로 탈출해 폴란드로 넘어갔다"며 "발레는 이런 일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50년간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해온 마리아 말란친(68)은 "문화는 항상 선택이 아닌 의무이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며 "많은 사람들이 터전을 잃은 이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는 그들에게 삶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중부 지토미르에서 가족과 함께 르비우로 대피해 온 빅토리아 팔라마추크(50)는 공연 후 "이곳에 와보면 삶은 패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우리 삶은 미사일이나 화학무기, 핵무기로도 폭파되거나 파괴될 수 없다"고 말했다.
scite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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