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절 연설서 우크라의 '우'도 안꺼낸 푸틴…전쟁 장기화하나
국내 청자에 할애된 '방어적' 연설…"국민 듣고 싶은 것만 말해"
주유엔 미 대사 "푸틴, 축하할 승리 없다는 사실 인정한 것"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러시아 '전승절')에서 한 연설은 그동안 서구 언론이 내놓은 예상을 모두 비껴갔다.
앞서 서방 언론들은 그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선언하면서 총동원령을 내리거나, 애초에 침공 명분으로 내세운 돈바스 지역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의 승리를 선포하거나,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을 상대로 핵 위협을 하며 긴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바 있으나 푸틴 대통령은 이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11분간 이어진 다소 짧은 이날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의 '우'자도 꺼내지 않은 채 알맹이 없는 연설을 해 향후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암시를 거의 주지 않았다고 서방 언론이 분석했다.
영국 BBC 방송은 '전승절 연설에서 단서를 거의 주지 않은 푸틴' 제하의 기사에서 푸틴의 이날 연설에서는 우크라이나 공격은 러시아를 위협하는 서방의 공세에 대한 선제 대응이었다는 익숙한 주장이 반복됐을 뿐 향후 방향에 대한 단서가 거의 없었다고 보도했다.
BBC는 푸틴 대통령이 '특별 군사작전'이나 '전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채 현 상황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의 침공에 저항한 2차 대전에 비유하면서 러시아 대중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전쟁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데 주력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푸틴이 일부러 우크라이나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쟁의 장기화를 예고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BBC는 "이번 연설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적대 행위를 끝낸다는 아무런 신호도 주지 않았다"면서 "현재로서는 이런 행위들이 계속될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 일간 더타임스도 "푸틴의 전승절 연설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그가 말하지 않은 것에 있다"면서 "(연설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어떤 종류의 승리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고, 전쟁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말도 없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라는 단어조차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푸틴 대통령이 연설에서 숨진 러시아 군인들의 유족에게 애도를 표하면서 추가 지원을 약속한 것에 주목하면서 "이는 그가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을 예상하며, 전쟁이 오랫동안 이어질 것으로 본다는 분명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짚었다.
더타임스는 푸틴의 이날 연설 전체는 전 세계에서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수백만 명의 러시아인들에게 당혹감을 안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국내 방어용 연설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아울러 이날 연설에서 비록 총동원령이 언급되지 않았을지라도, 이는 러시아가 그런 계획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 일반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기보다는 그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것만을 말했다고 논평했다.
NYT는 러시아 대중을 향한 그의 메시지는 '군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계속 싸울 것이고, 대중은 일상의 삶을 계속 살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가 이날 연설에서 한 유일한 정책 발표는 유자녀에 대한 추가 지원 등 전쟁으로 초래된 고통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푸틴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인 글레브 파블로프스키는 "푸틴은 어떤 선동도 그 자체로는 누군가를 (전장에서) 죽게 만들 수 없음을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는 표면적으로는 러시아 대중이 이번 전쟁을 광범위하게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이런 지지가 확고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크렘린궁 내부의 우려가 작용하고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파블로프스키 전 보좌관은 "푸틴은 자신이 권좌에 오른 뒤 러시아 국민과 맺은 묵시적 합의, 즉 평범한 러시아인은 정치를 멀리하고 크렘린궁은 대체로 민중이 자신들의 삶을 살도록 허용한다는 것을 훼손하길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사람들은 집에 앉아 TV를 보면서는 전쟁을 지지할 준비가 돼 있지만, 실제로 전장에 나가 싸울 태세는 전혀 갖춰지지 않았을 수 있다. 푸틴은 이를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이번 연설에서 전면전을 선포하거나, 핵 위협 등을 언급하지 않았을지라도 위협 수준은 여전히 높다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의 견해다.
프랑스에 있는 정치분석회사인 R. 폴리티크의 창립자이자 오랜 푸틴 연구자인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푸틴은 많은 러시아인이 전통적인 공휴일로 향유하는 전승절 행사를 긴장 고조의 신호를 주는 기회로 삼기엔 적절치 않다고 봤을 수 있다"며 "그의 시각에서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병력 부족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서방의 무기 지원인 만큼, 이를 저지하기 위한 '본보기'로 핵무기를 터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CNN은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푸틴의 이날 연설에 대해 "푸틴은 축하해야 할 승리가 없음을 인정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푸틴의 우크라이나에서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그로서는 승리를 선언할 이유도, 이미 2개월 넘게 끌고 온 전쟁을 선포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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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청자에 할애된 '방어적' 연설…"국민 듣고 싶은 것만 말해"
주유엔 미 대사 "푸틴, 축하할 승리 없다는 사실 인정한 것"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러시아 '전승절')에서 한 연설은 그동안 서구 언론이 내놓은 예상을 모두 비껴갔다.
앞서 서방 언론들은 그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선언하면서 총동원령을 내리거나, 애초에 침공 명분으로 내세운 돈바스 지역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의 승리를 선포하거나,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을 상대로 핵 위협을 하며 긴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바 있으나 푸틴 대통령은 이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11분간 이어진 다소 짧은 이날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의 '우'자도 꺼내지 않은 채 알맹이 없는 연설을 해 향후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암시를 거의 주지 않았다고 서방 언론이 분석했다.
영국 BBC 방송은 '전승절 연설에서 단서를 거의 주지 않은 푸틴' 제하의 기사에서 푸틴의 이날 연설에서는 우크라이나 공격은 러시아를 위협하는 서방의 공세에 대한 선제 대응이었다는 익숙한 주장이 반복됐을 뿐 향후 방향에 대한 단서가 거의 없었다고 보도했다.
BBC는 푸틴 대통령이 '특별 군사작전'이나 '전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채 현 상황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의 침공에 저항한 2차 대전에 비유하면서 러시아 대중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전쟁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데 주력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푸틴이 일부러 우크라이나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쟁의 장기화를 예고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BBC는 "이번 연설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적대 행위를 끝낸다는 아무런 신호도 주지 않았다"면서 "현재로서는 이런 행위들이 계속될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 일간 더타임스도 "푸틴의 전승절 연설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그가 말하지 않은 것에 있다"면서 "(연설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어떤 종류의 승리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고, 전쟁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말도 없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라는 단어조차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푸틴 대통령이 연설에서 숨진 러시아 군인들의 유족에게 애도를 표하면서 추가 지원을 약속한 것에 주목하면서 "이는 그가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을 예상하며, 전쟁이 오랫동안 이어질 것으로 본다는 분명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짚었다.
더타임스는 푸틴의 이날 연설 전체는 전 세계에서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수백만 명의 러시아인들에게 당혹감을 안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국내 방어용 연설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아울러 이날 연설에서 비록 총동원령이 언급되지 않았을지라도, 이는 러시아가 그런 계획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 일반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기보다는 그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것만을 말했다고 논평했다.
NYT는 러시아 대중을 향한 그의 메시지는 '군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계속 싸울 것이고, 대중은 일상의 삶을 계속 살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가 이날 연설에서 한 유일한 정책 발표는 유자녀에 대한 추가 지원 등 전쟁으로 초래된 고통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푸틴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인 글레브 파블로프스키는 "푸틴은 어떤 선동도 그 자체로는 누군가를 (전장에서) 죽게 만들 수 없음을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는 표면적으로는 러시아 대중이 이번 전쟁을 광범위하게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이런 지지가 확고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크렘린궁 내부의 우려가 작용하고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파블로프스키 전 보좌관은 "푸틴은 자신이 권좌에 오른 뒤 러시아 국민과 맺은 묵시적 합의, 즉 평범한 러시아인은 정치를 멀리하고 크렘린궁은 대체로 민중이 자신들의 삶을 살도록 허용한다는 것을 훼손하길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사람들은 집에 앉아 TV를 보면서는 전쟁을 지지할 준비가 돼 있지만, 실제로 전장에 나가 싸울 태세는 전혀 갖춰지지 않았을 수 있다. 푸틴은 이를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이번 연설에서 전면전을 선포하거나, 핵 위협 등을 언급하지 않았을지라도 위협 수준은 여전히 높다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의 견해다.
프랑스에 있는 정치분석회사인 R. 폴리티크의 창립자이자 오랜 푸틴 연구자인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푸틴은 많은 러시아인이 전통적인 공휴일로 향유하는 전승절 행사를 긴장 고조의 신호를 주는 기회로 삼기엔 적절치 않다고 봤을 수 있다"며 "그의 시각에서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병력 부족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서방의 무기 지원인 만큼, 이를 저지하기 위한 '본보기'로 핵무기를 터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CNN은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푸틴의 이날 연설에 대해 "푸틴은 축하해야 할 승리가 없음을 인정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푸틴의 우크라이나에서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그로서는 승리를 선언할 이유도, 이미 2개월 넘게 끌고 온 전쟁을 선포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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