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 좋던 나토의 동진, 터키 어깃장에 막히나

입력 2022-05-1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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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 좋던 나토의 동진, 터키 어깃장에 막히나
나토 회원국 만장일치 필요한 핀란드·스웨덴 가입에 터키 '부정적'
친러 성향 헝가리 총리도 변수…나토 분열상 노출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핀란드와 스웨덴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천명하고 미국이 이를 지지하는 등 나토의 동진(東進)이 급물살을 타는가 했는데 터키의 반대라는 변수를 만났다.
나토에 가입하려면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하지만 터키가 공개적으로 어깃장을 놓아 이들 국가의 나토 가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가뜩이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유럽연합(EU)의 제재 대열에서도 국가 간 이견이 노출된 가운데 군사동맹인 나토도 회원국의 단일대오가 흔들리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5일 외신들에 따르면 핀란드와 스웨덴은 이르면 내주 나토 가입 신청을 할 예정이지만 회원국 터키의 반대에 직면했다.
12일(현지시간) 핀란드가 나토 가입 방침을 공식화하고 스웨덴도 핀란드와 보조를 맞추겠다는 뜻을 밝힐 때만 해도 이들의 나토 가입은 큰 무리가 없으리라는 게 중론이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양국의 가입 절차가 신속히 진행될 것이라고 언급했고 나토를 이끄는 핵심국 미국도 지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 사안은 오는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담에서 바로 정식 의제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그런데 갑자기 터키라는 돌발 변수가 나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3일 두 국가의 나토 가입에 긍정적이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터키가 끝까지 반대하면 두 국가의 나토 가입은 쉽지 않다.
신규 회원국 가입은 기존 30개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가능한 나토 규정 때문이다.

터키가 반대하는 것은 나토 운영상 문제 때문이 아니라 터키의 국익과 배치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테러단체의 게스트하우스 같다"고 언급했다. 이들 국가가 터키의 분리 독립 세력인 쿠르드족에 포용적인 자세를 보이는 데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특히 스웨덴을 겨냥해 "스웨덴 의회에는 쿠르드노동자당(PKK)과 같은 테러 단체들이 들어가 있다"고 지적했다.
PKK는 터키 남동부와 이라크 북부·시리아 북동부 등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단체로, 터키 정부는 이를 최대 안보 위협 세력으로 본다.
그러나 스웨덴과 핀란드가 PKK에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고 특히 스웨덴 의회에서는 쿠르드족 의원 6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전부터 터키는 PKK에 맞서는 데 있어 NATO와 유럽 동맹국의 협조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불평해 왔다. 미국과 EU는 터키와 마찬가지로 PKK를 테러 조직으로 분류한다.
이브라힘 칼른 터기 대통령실 대변인도 14일 "우리는 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 문제는 터키의 국가 안보 문제"라고 거론하며 PKK 문제를 다시 부각했다.
스웨덴에선 터키가 나토 문제를 자국의 국익에 이용하려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 스웨덴 당국자들은 자국의 나토 가입 문제를 두고 터키와 논의했을 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며 에르도안의 발언은 모종의 협상을 위한 계략이라고 평가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안 린데 스웨덴 외무장관도 스웨덴 라디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터키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의 나토 가입을 이용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토 가입) 승인 과정이 항상 불확실성을 수반한다는 점을 안다"면서 "특히 이 승인 카드는 (회원국) 국내 정치에 이용될 수 있다"고 전했다.
터키의 반대를 어느 정도 예측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달 초 한 스웨덴 관리가 "우리나라는 쿠르드족 문제에 적극적이었고 의회에 이들과 관련 있는 인사들도 많다"라며 "이 때문에 역풍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내년 6월 대선과 총선을 앞둔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국 여론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PKK 문제를 언급했다는 분석도 있다.

핀란드는 터키의 노골적인 반대에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은 14일 핀란드 국영 매체 'YLE TV1'와의 인터뷰에서 "그걸로 터키가 (나토 가입을) 영원히 방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면서도 "지금까지 터키가 우리한테 던지는 메시지는 그와 정반대였다"라고 말했다.
이 문제로 그동안 나토 안에서 청개구리 행보를 보인 터키와 나토의 불안정한 관계가 다시 가시화한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터키는 2020년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을 구입하고 자국 내 배치하는 등 친러 행보를 보여 미국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이번 일로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방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온 나토가 더 분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지원과 방위력 강화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그 수위를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일례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큰 안보 위협을 느낀 동유럽 국가들은 강경 대응을 요구했지만 다른 국가들은 자국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와 대외명분 사이에서 저울질하며 어느 정도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게 사실이다.

친러시아 성향이 강한 헝가리도 변수다.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2010년 재집권한 뒤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밀착해 왔다.
최근 러시아산 원유 금수를 골자로 한 EU의 추가 제재 논의가 헝가리의 반대로 정체된 상황이다.
다만 터키가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지 명시적으로 반대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나토와 당사국, 터키와의 대화 시도는 계속 있을 것으로 보인다.
14∼15일 핀란드와 스웨덴, 터키 당국자들은 나토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한다.
터키의 최근 행보는 '거부권'을 손에 쥐고 몸값을 높이면서 시리아 난민 위기 때처럼 유럽의 경제 지원을 받아내 최근 심화한 경제난의 돌파구로 삼으려 하는 속셈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터키가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얻어낸다면 반대 목소리를 누그러트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이들 국가의 뒤에는 나토를 주도하는 미국이 있다. 미국은 터키 측과 대화를 계속해보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지금까지 두 국가의 나토 가입을 반대한 것은 터키가 유일하다"라고 지적했다.
kit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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