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를 정치 뜻대로 하면 도착지는 전쟁"…일본 감독의 경고

입력 2022-05-19 09:01   수정 2022-05-19 11:09

"교과서를 정치 뜻대로 하면 도착지는 전쟁"…일본 감독의 경고
"일본 역사교육이 러시아 애국교육과 뭐가 다르냐고 할 세상될 것"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무라타 사키코 통신원 = "일본 역사 교육이 러시아의 애국 교육과 뭐가 다르냐고 할 세상이 돼 버릴 것입니다."
일본 정치 권력의 교육 자율성 침해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교육과 애국'의 감독인 사이카 히사요 일본 마이니치방송(MBS) 디렉터는 권력이 교과서 내용을 입맛대로 바꾸는 것을 그냥 뒀을 때 벌어질 상황에 관해 이런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 교육과 애국이 도쿄, 오사카, 교토 등에서 개봉한 것을 계기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사이카 디렉터는 "다 함께 목소리를 높여 학문의 자유를 위협하는 정치 개입을 배제하지 않으면 이 사회의 미래가 매우 위험해질 것"이라고 진단하고서 이같이 언급했다.
그는 교육과 애국을 제작하는 동안 "역사 교육·교과서를 정치의 의도대로 하면 마지막에 도착하는 곳은 전쟁"이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영화를 공개한 날이 공교롭게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날(2월 24일)과 겹쳐 그런 인식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근래에 권력에 의한 교육 개입이나 학문의 자율성 침해가 문제가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올해 3월 종료한 일본 고교 교과서 검정에서는 '강제연행'을 '동원'으로 고치거나 '일본군 위안부'를 '위안부'로 수정하는 등 일본 정부의 의향에 따라 교과서를 수정한 사례가 많았다.
검정 당국이 '정부의 통일된 견해와 다르다'는 취지로 반복해 지적하며 내용을 수정하도록 출판사를 사실상 압박한 결과다.
스가 요시히데 정권 시절 일본 정부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에서 배제됐는데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출범한 후에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교육과 애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관한 교과서 기술을 둘러싼 일본 우익의 공격이나 정치권의 압력, 학술회의 문제 등을 비판적 시선으로 다뤄 주목받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자세히 다뤘다가 우익 세력의 공격으로 교과서 채택률이 낮아져 결국 도산한 출판사 니혼서적 사례를 소개하는 등 역사를 부정하는 세력의 집요한 행태를 조목조목 드러냈다.

사이카 디렉터는 올해 검정에서 드러난 일본 정부의 교육 개입이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이 가해국이 돼 아시아의 사람들을 괴롭힌 역사를 가르침으로써 전쟁의 비참함과 공포를 더 깊이 있게 알릴 수 있다면서 "일본군의 가해를 (교과서에) 기술할 수 없다는 것은 아이들이 일본의 가해 역사를 배울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과 애국은 2017년에 MBS의 다큐멘터리로 방영됐고, 2019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바 있다.
그럼에도 최근 상황을 추가로 반영해 교육과 애국을 굳이 영화로 만든 이유에 관해 사이카 디렉터는 "교육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초부터 일본 교육 현장을 취재해 온 사이카 디렉터는 교육 문제와 관련된 한국의 동향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한국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에 관해 "그것이 한국"이라고 반응했다.
사이카 디렉터는 "국정 교과서로 하려는 명백한 정치적인 압력도 있지만 이를 거부하는 민주적인 힘·에너지가 아주 많다"고 한국 시민 사회의 대응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한국과 달리 잘못된 정치인을 퇴장시켜야 한다는 공통의 인식이 흐려졌으며 비판한 사람만 피해를 본다는 냉소주의가 확산했다고 진단했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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