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먼 "기록적 무역흑자는 착시 현상…제재 탓에 수입 급감한 것"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세계적인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최근 러시아의 기록적인 무역흑자는 착시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칼럼에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고 분석했다.
일단 크루그먼 교수는 러시아산 원유 등 개별 품목에 대한 금수조치는 아직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를 퇴출했지만, 다른 국가들의 호응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로 하루에 10억 달러(약 1조3천억 원)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수출에는 큰 지장이 없는 데다가 에너지 가격의 급등으로 수익이 더욱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무역흑자가 수개월 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크루그먼 교수는 이 같은 무역흑자는 착시현상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러시아가 국제사회로부터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에 무역흑자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들로부터 수입하는 액수는 지난 3월 현재 53%나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크루그먼 교수는 러시아가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도 45%나 떨어졌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이와 관련,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이나 일본, 미국의 부품에 의존해 물건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 입장에서라면 러시아에 물건을 팔아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을 도와주는 모양새를 보이고 싶겠나"라고 반문했다.
러시아 경제에 필요한 다양한 상품들이 수입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치상의 무역흑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러시아 주요 은행들이 금융제재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전산망에서 퇴출당한 것도 러시아가 필요한 상품을 수입하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 은행이 수출입과정에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에 러시아 수입업체들이 외국 업체와 거래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100달러짜리 현찰이 가득 찬 서류 가방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푸틴 정권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벌어지는 군사적인 전쟁과 함께 경제 전쟁에서도 지고 있다면서 칼럼을 마무리했다.
국제 경제가 전공 분야인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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