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악의 존재, 무장해야 할 최고의 이유"…텍사스 주지사는 불참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텍사스주에서 발생한 대형 총기 난사 참사로 미국 전역이 비탄에 빠진 가운데 전미총기협회(NRA)의 연례 컨벤션 행사가 27일(현지시간) 사흘 일정으로 텍사스에서 열렸다.
CNN 방송과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휴스턴의 조지 R. 브라운 컨벤션센터에서 NRA 산하 로비 기구인 'NRA 입법조치협회(ILA)'의 연례 리더십 포럼이 3년 만에 열렸다고 보도했다. 총기 참사가 벌어진 지 사흘 만에 총기 참사가 일어난 학교와 약 440㎞ 떨어진 곳에서다.
지난해와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이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총기 규제 개혁론자와 민주당 정치 지도자들은 이런 시점에 행사를 여는 것은 이번 참사의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거세게 비난했지만 NRA는 행사를 강행했다.
행사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악의 존재가 시민들을 무장시켜야 할 이유라며 총기 소유 옹호론을 목청 높여 역설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빼앗긴 소중한 젊은 영혼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실"이라며 "이는 어떤 말로도 묘사할 수 없는 악에 의해 우리에게서 강탈당한 상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보낼 400억달러(약 50조3천억원)가 있다면 우리는 아이들을 집에서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특히 총기 소유권과 관련해 "우리 세상에 악의 존재는 법을 지키는 시민을 무장해제해야 할 이유가 아니다. 악의 존재는 법을 지키는 시민들을 무장해야 할 최고의 이유"라고 강조했다.
텍사스주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이날 행사에 참가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무장한 나쁜 자들을 제지하는 건 무장한 착한 자들"이라며 "우리는 악과 비극에 대해 헌법을 유기하거나 법을 지키는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크루즈 의원은 최근 민주당이 유밸디의 대규모 참사로 숨진 19명의 어린이와 교사 2명의 죽음을 정치화하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공화당 소속인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와 댄 패트릭 부지사는 행사 참석을 취소했다.
다만 애벗 주지사는 사전에 녹화된 동영상을 보냈다. 애벗 주지사는 동영상에서 "법률이 살인을 멈추지 못했듯이 우리는 총격범의 사악한 행동이 그가 파괴하려 했던 공동체를 뭉치지 못하게 막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CNN은 "텍사스에서 총기를 가장 지지하는 일부 정치인조차 끔찍한 학교 대학살로부터 불과 며칠 만에 대형 총기 로비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정치적으로 재앙적인 장면이란 것을 깨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총기 참사에 쓰인 무기인 AR-15형 소총을 제조한 총기업체 대니얼 디펜스도 행사에 불참했다. 이 회사는 "우리 제품 중 하나가 범죄적으로 악용된 끔찍한 비극 때문에 NRA 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빈센트', '아메리칸 파이' 등의 노래로 잘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돈 맥린을 포함해 가수 4명도 이 행사의 콘서트에 참석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총기 안전 옹호론자들은 행사 개최가 모욕적인 일이라며 행사 취소를 촉구했지만 허사였다.
휴스턴 시장인 실베스터 터너는 "이틀 전이나 어제 희생자 가족들에게 기도와 위로를 보낸다고 말하고는 3∼4일 뒤에 총과 돌격소총을 판촉하는 행사에 나타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을 경호하는 비밀경호국(SS)은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설하는 행사에 총기 소지·반입을 일절 금지했다. NRA가 더 많은 사람이 총기로 무장할수록 더 안전해진다고 주장하는 점에 비춰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CNN은 비꼬았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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