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원수가 된 형제 러시아·우크라이나 그리고 BTS

입력 2022-06-03 07:10  

[특파원 시선] 원수가 된 형제 러시아·우크라이나 그리고 BTS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21세기 유럽에서 무슨 전쟁이에요. 러시아 사람이나 우크라이나 사람이나 같은 민족인데 말도 안 돼요. 정치인들끼리 싸우는 것뿐이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긴장이 고조하던 지난 1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해 "전쟁이 정말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묻자 키이우 시민 갈리나 씨가 한 답이다.
그러나 실제로 전쟁은 일어났고 1월에 기자가 방문한 도네츠크 주(州)의 슬라뱐스크·크라마토르스크·이지움은 최전선의 격전지가 됐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남부 체르니우치에서 만난 올레나 씨에게 "전쟁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가"라고 물었다.
올레나 씨는 "러시아인을 형제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은 우리 적이고 우크라이나인을 마구 죽이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앞으로 영원히 남남일 것"이라고 답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같은 슬라브 민족의 형제 국가였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완전히 갈라서는 모습이다.
두 국가는 민족과 종교가 같고 역사도 상당 부분 공유한다. 우크라이나 자체가 한때 소러시아로 불리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도 큰 차이가 없는 데다 우크라이나 동부는 러시아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집단이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집단보다 많았다.
전쟁 직전까지도 우크라이나는 경제적으로 러시아에 크게 의존했고 러시아 문화를 향유했다. 양국 국민 간 혈연관계도 얽혀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집안에 러시아 국적의 친척이 있는 경우는 매우 흔한 일이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했다면 우크라이나가 자연스럽게 러시아에 동화될 수도 있었을 터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은 양국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고 말았다.
최악의 인도주의적 참사를 겪으면서도 80일 넘게 러시아의 공격을 버텨낸 마리우폴은 전쟁 전 우크라이나 내에서 가장 친러 성향이 강한 지역이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상당수는 전쟁 전 코미디언 출신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이 발발하자 수도 키이우를 지키며 항전을 독려했고 현재 그의 지지율은 90%를 상회한다.
키이우 시민은 시내 가장 높은 언덕에 세워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우정을 상징하는 동상을 철거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그들이 말하는 우정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도시를 파괴하고 수만 명의 평화로운 사람을 살해했다"고 비판했다.
체르니우치 방문 당시 현장 안내를 맡았던 세르히는 "전쟁 전 우크라이나 가요 차트의 70% 이상이 러시아 노래였지만, 전쟁 후에는 러시아 노래가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자국의 영향권 아래 두기 위해 침공을 감행했지만, 오히려 반러 사상과 우크라이나인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결과만 낳은 셈이다.
록 음악을 좋아하는 30살 청년 세르히는 한국에서 어떤 노래가 인기가 많냐고 물었다. 최신 가요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라 누구나 알 법한 BTS를 이야기했다.



"맙소사 BTS라니…정말 내 취향은 아닌데. 너무 오글거리지 않아? 걔네가 왜 인기 있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 그래도 칼라시니코프(러시아제 소총)보다는 낫지. 세계 정복을 하려면 그런 식으로 해야지."
세르히의 말에 순간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김구 선생의 글귀가 떠올랐다.
러시아는 전쟁이 시작되면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군을 환영할 것으로 짐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총과 대포를 앞세워 민간인을 살해하고 삶의 터전을 파괴한 침략자를 누가 환영할까.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대 러시아 항쟁은 먼 훗날 우크라이나의 영웅담으로 각색될지도 모를 일이다. '붉은 곰과 싸운 광대왕' 같은 식으로 말이다.
kind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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