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수입품 의존도 커…수입대체 정책 효과 미미"
(서울=연합뉴스) 김계환 기자 =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제재로 각종 물품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에어백 없는 차가 팔리는 등 러시아 곳곳에서 제재 여파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러시아 정부가 원유·천연가스 판매를 통해 확보한 현금을 통해 경제 충격을 완화하려 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이미 제재로 인한 고통을 맛보고 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지난 수십 년간 서방 수입품에 크게 의존하던 러시아 경제가 제재로 흔들리면서 소비자들이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립고등경제대학(HSE)의 연구에 따르면 2020년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입이 차지한 비중은 20%에 달해 중국의 16%보다 컸다.
2020년 러시아 소매 시장에서 비(非)식품 소비재 매출의 75%를 수입품이 차지했으며 통신장비 부문에서 수입품 비중은 86%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재가 이어지면서 자동차 업체들은 에어백이나 잠김방지브레이크시스템(ABS)이 장착되지 않은 자동차를 내놓고 있으며 일부 자동차 부품은 공급 부족 속에 가격이 7배나 치솟았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4월 러시아 내 산업생산이 부품 부족 등으로 인해 지난해 동기보다 61%나 급감하자 규정을 완화해 에어백이나 ABS 등이 장착되지 않아도 자동차를 팔 수 있도록 허용했다.
영화업계에서는 월트디즈니, 소니그룹,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등이 러시아에서 신작 개봉을 중단하면서 9년 전 나온 할리우드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를 다시 상영하는 영화관도 나오고 있다.
우랄과 서부 시베리아지역의 영화 체인업체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관객이 70∼80% 줄어든 상태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공항에서는 사용기한이 끝나가는 승객·짐 검사장비를 교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 공항협회는 수입에 의존하던 검사장비를 국내 생산하려면 적어도 5년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현재는 노후 장비를 계속 사용하거나 직원들이 승객과 짐을 일일이 수동으로 수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아에로플로트 산하 저비용항공사인 포베다 항공은 보잉과 에어버스가 러시아 내 서비스 제공을 중단함에 따라 대체 부품 공급선을 찾을 때까지 재고 부품으로 버텨야 한다면서 보잉 737-800 기종의 운항 편수를 기존 41편에서 25편으로 줄였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서방 제재에 대비해 자급자족식 경제 구축을 목표로 추진해 온 수입대체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한 상태라고 WSJ은 지적했다.
앞서 러시아 정부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가해진 서방의 제재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 수입 상품을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수입대체 전략을 추구해왔다.
러시아는 '러시아 요새화'(Fortress Russia)로 불린 수입대체 정책에 2015∼2020년 세출예산의 1.4%에 해당하는 2조9천억루블(약 56조원)을 투입했지만, 수입품 의존도는 오히려 악화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비우호국'의 특허·상표권 도용을 사실상 합법화해 전자부품부터 종이, 섬유, 기관차, 원자로에 이르는 제품을 생산업체의 의사와 관계없이 수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도 했지만, 수요를 충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시장에는 '짝퉁' 상품이 판치고 있다.
코카콜라와 환타, 스프라이트가 없어진 진열대에는 이들 제품을 모방해 만든 '쿨콜라'(CoolCola)와 '판시'(Fancy), '스트리트' 같은 짝퉁 상품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컨설팅 업체인 인포라인의 이반 페디아코프 최고경영자(CEO)는 러시아 정부가 제재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상황을 반전시킬 능력은 없다면서 경기후퇴와 소비지출 감소, 전반적인 경제지표의 악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kp@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