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워싱' 비난속 수조 원 쏟아부어 美PGA 무력화 나선 LIV 골프
사우디 인권 비난했던 바이든, 빈 살만에 '석유 증산' 구걸 외교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논설위원 = "선수들이 상금을 받는 순간 골프계의 상황은 바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막대한 오일머니를 등에 업은 리브(LIV) 골프 개막전이 끝난 12일 대회 커미셔너인 그렉 노먼의 말대로 역대급 돈 잔치가 벌어졌다. 6년 전 미 PGA 투어 발스파 챔피언십 이후 우승이 없던 한물간 골퍼 샬 슈워츨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61억 원을 받았고, 24오버파로 꼴찌를 한 미국의 무명 골퍼도 웬만한 한국 투어 우승 상금인 1억5천만 원을 챙겼다. 유럽 2부리그 출신의 두 플레시가 2위를 해 7년여간 프로 골퍼로 번 총상금 6억여 원의 6배가 넘는 32억 원을 사흘 만에 챙겼다. 사우디의 인권침해 논란, 돈으로 신사 스포츠인 골프의 전통을 망가뜨리려 한다는 비판 속에 PGA가 '리브 참여 선수 출전권 정지' 카드까지 꺼내 들었지만, 프로 골퍼들이 이 엄청난 돈의 유혹을 견디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재산이 2조 원이 넘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리브의 1조 원 계약금 제안을 거부했고, 가장 인기 있는 프로 골퍼 가운데 한 명인 로리 매킬로이는 "돈으로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진 못할 것"이라고 리브의 돈질을 맹비난했다. 세계 톱랭커인 스코티 셰플러, 저스틴 토마스, 조던 스피스 등도 PGA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 그러나 한때 세계 1위였던 더스틴 존슨, 우즈의 맞상대였던 필 미컬슨 등이 약 2천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리브에 합류한 데 이어 스타급 선수인 브라이슨 디섐보와 패트릭 리드도 엄청난 계약금을 받고 다음 대회부터 참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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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대회 주관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이끄는 사우디 국부펀드(PIF)다. 올해 37세인 빈 살만은 2017년 사촌 형 무함마드 빈 나예프를 폐하고 왕세자에 오른 뒤 부총리 겸 국방장관, 왕실 직속 경제위원장을 맡아 88세인 아버지 살만 빈 압둘 아지즈 국왕을 대신해 사우디 왕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다. 부친 사후 그가 왕위를 물려받게 되면 통치 기간은 향후 50년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별명도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다. 사우디의 천문학적 오일 머니는 사실상 그의 손안에 있다. 개인 재산이 정확히 집계되진 않지만 적게는 1천400조 원에서, 많게는 2천500조 원으로 알려졌다. 세계 부자 랭킹에 왕족은 제외돼 공식 부자 1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다. 그의 자산은 250조 원가량이다. 빈 살만의 PIF 운용 규모는 700조 원이다. 최근 유가 급등으로 애플을 제치고 세계 시가총액 1위를 탈환한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사우디아람코의 지분 5%도 PIF 소유다. 사우디아람코의 시총은 2천500조 원가량으로 한국 증시 전체 시총 규모를 넘어선다. 연간 순이익은 100조 원 이상이다. 리브 개막전 시상식에도 야시르 오스만 알 루마이얀 사우디아람코 회장 겸 PIF 총재가 참석했다. PIF의 후원을 받는 리브는 화수분을 끼고 있는 셈이다.
미국 내에서 빈 살만이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이었던 카슈끄지가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 납치돼 피살된 배후에 빈 살만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권 탄압국가 명단에는 북한, 중국과 함께 사우디가 단골로 오른다. 인권 옹호를 부르짖는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월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에 일부 무기 금수조치까지 단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빈 살만과 각별한 사이였다는 점도 바이든의 대사우디 강경책의 배경이었을 것이다. 빈 살만의 국부펀드는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전 백악관 선임고문의 회사에 2조5천억 원을 투자했다. 바이든은 2019년 대선 유세 때 "사우디가 대가를 받도록 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대러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유가를 떨어뜨리는 길밖에 없는 미국은 사우디에 석유 증산을 요청해야 하는 처지다. 바이든 대통령은 곧 사우디를 방문해 증산 요청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카슈끄지 문제는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작년에 영국 프리미어리그인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구단을 인수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번에 리브 골프를 창설한 데 대해 미언론은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이라고 비판한다. 사우디 여성 인권 문제나 언론인 살해 등 나쁜 평판을 스포츠로 세탁하려 한다는 것이다. 2001년 9ㆍ11 테러 희생자 단체인 '9/11 가족연합'은 리브 골프 참여 선수들에게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사우디의 시도에 가담한 당신들은 우리뿐 아니라 미국을 배신한 것"이라고 공개 비난했다. 하지만 미컬슨은 "우리(프로 골퍼)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고 했고 슈워츨은 "나는 이제까지 누가 상금을 주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차피 프로 스포츠 세계는 돈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우디는 미국의 동맹국이고, 바이든도 빈 살만과 만난다. 중국도 인권 침해국인데 이들이 NBA와 PGA에 막대한 후원을 하며 스폰서 역할을 하는 것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왜 유독 사우디 자본의 프로 골프 투자만 문제 삼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프로 스포츠 세계나 국제 외교 무대나 보편적 가치를 앞세운 말들이 당장의 현실적 필요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리브 골프와 바이든의 사우디 방문이 여실히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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