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과 정치권 모두 과거 경험으로부터 교훈 얻어"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970년대의 '대(大)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이 오늘날 미국에서 되풀이될 가능성은 매우 작다고 전망했다.
연준과 정치권 모두 과거 인플레이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버냉키 전 의장은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70년대식 인플레이션이 재발할 수 있을 것인지 자문한 뒤 "거의 확실히 그렇지 않다"(almost certainly not)라고 자답했다.
그는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이어진 과거 인플레이션과 지금의 인플레이션 간에 유사점이 있음을 인정했다.
두 시기에 모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전 저물가가 오랜 기간 이어졌고, 연방정부의 막대한 지출이 수요를 늘린 측면이 있다. 과거엔 베트남 전쟁 관련 정부 지출과 린든 존슨 전 행정부 당시 '위대한 사회' 정책이 있었다면 현재엔 코로나19발 경기침체에 대응한 경기부양책이 있었다.
또한 전 세계적인 에너지·식료품 가격 충격이 1970년대와 오늘날 물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도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우선 1960∼1970년대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정치권이 거세게 반대했다.
예컨대 존슨 대통령은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하도록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 당시 연준 의장을 강하게 압박했고, 이에 따라 마틴 전 의장은 한동안 금리 인상을 자제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현재 제롬 파월 의장 체제의 연준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 있어서 백악관과 의회 모두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연준은 오직 경제 수치에만 근거해 경제의 장기적인 이익의 관점에서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독립성을 획득했다고 그는 평가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아울러 인플레이션의 원인, 인플레이션 통제 책임성과 관련한 연준의 입장도 확연히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연준을 이끌었던 아서 번스 전 의장은 당시 인플레이션을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으로 판단했다. 대기업과 노동조합이 무리하게 제품 가격과 임금을 올려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번스 전 의장은 연준이 이런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고 봐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고 대신 당시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 임금과 가격을 통제할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런 대응은 엄청난 실패로 드러났다고 버냉키 전 의장은 설명했다.
그는 연준의 통제를 벗어난 요인들이 물가 상승세에 일조했다는 번스 전 의장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오늘날에도 이런 공급 측면 요인들, 즉 에너지·식료품 가격 상승과 세계 공급망 혼란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연준은 이런 문제에 있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통화정책 당국자들은 이런 공급 측 문제가 완화하길 기다리면서 수요 증가세를 둔화시켜 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연준은 인플레이션 통제에 있어 자신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고, 그렇게 할 수단과 충분한 정치적 독립성도 있다고 말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통화정책을 어느 정도까지 긴축적으로 할지, 이에 따른 경기 둔화 내지 후퇴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는 ▲ 공급 측 문제가 얼마나 빨리 해소되는지 ▲ 긴축적인 금융상황에서 총지출이 어떻게 반응할지 ▲ 인플레이션이 가라앉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연준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지 등에 달렸다고 봤다.
그는 이중 연준의 신뢰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이란 대중의 믿음만 있다면 인플레이션이 계속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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