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판 다보스포럼' SPIEF서 연설…서방에 거친 비난 쏟아내
"미, 책임은 없고 이익만 누려…식량가격 상승, 서방 탓"
"우크라 EU 가입은 반대 안해"…사이버공격으로 행사 90분 지연도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SPIEF) 연설에서 쏟아낸 것은 서방에 대한 비난이었다. 동시에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주도하는 단극 세계질서의 종식을 선언했다.
타스통신, CNN, 가디언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연설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미국을 향해 거친 비난을 퍼부으며, 세계 경제 위기는 서방 때문이고 우크라이나 침공도 돈바스 지역 주민 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1년 반 전 다보스 포럼에서 연설할 때 단극 세계질서 시대는 끝났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며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해서든 (이 시대를) 되살리고 유지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끝났다"며 "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냉전에서 승리했을 때, 미국은 지구상에서 자신을 신의 대리인으로 선언했다. (이들은) 책임은 없고 이익만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런 이익을 신성시했고, 이제 일방통행으로 세상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들은 망상 속에서 과거를 살고 있다. 자신들이 이겼고 나머지는 모두 식민지, 뒷마당이며 그곳 사람들은 2등 시민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는 식량 가격 상승의 책임은 미 행정부와 유럽 관료주의 탓으로 돌렸고, 자국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해서는 '미친 짓'이자 '무모한 짓'이라고 불렀다.
러시아 경제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이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러시아 기업인들의 노력으로 경제는 점차 정상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을 향해서는 주권을 완전히 상실했고, 엘리트들이 남의 의견에 놀아나며 유럽과 유럽 기업의 진정한 이익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은 개전 4개월을 향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러시아가 분쟁에 어쩔 수 없이 개입한 것이라며 이를 "무조건적인 권리를 가진 주권국가의 결정"이라고 불렀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과 러시아어 사용 주민들이 우크라이나 당국으로부터 차별을 당해 이들을 보호하고자 불가피하게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했다는 논리다.
우크라이나 EU 가입을 두고서는 반대할 뜻이 없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연설 후 진행된 토론회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달리 EU는 군사기구나 정치 블록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이해할 수 있으며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며 "경제협력체 가입 여부는 특정 국가의 주권적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연설은 대규모 사이버 공격으로 인해 90분 이상 늦춰 시작됐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회담 시스템에 대한 분산서비스거부(DDoS·디도스) 공격으로 연설이 연기됐다고 설명했다.
공격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우크라이나 정부가 만든 해킹그룹 '우크라이나 IT 군대'는 최근 텔레그램 채널에서 이 포럼을 목표물로 명시한 바 있다.
'러시아판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SPIEF는 러시아 최대의 국가경제포럼으로, 과거 서방 정·재계 인사들도 찾았지만 올해는 참석자들이 대폭 축소됐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쿠바, 베네수엘라, 미얀마, 탈레반 인사 등이 참석했고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알렉산더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도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유명 기업인과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다수가 불참을 택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회의에 참석한 러시아 인사들은 제재 속에서도 자국 경제가 당초 예상보다는 나아지고 있다고 자평했다.
푸틴 대통령이 서방을 때리는 동안 서방은 더욱 단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루마니아 정상들이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찾은 데 이어 EU 집행위원회는 우크라이나에 EU 가입 후보국 지위 부여에 긍정적인 의견을 냈다.
이날 저녁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키이우를 깜짝 방문, 우크라이나군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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